개천(開川)에 용(龍)이 날수 없는 사회
개천(開川)에 용(龍)이 날수 없는 사회
  • 중부매일
  • 승인 2019.05.05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의 눈] 최근배 전 충주시의회 의원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자"이말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 1월 신년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을 통한 다짐이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한 마디의 속담을 넘어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많은 흙수저들에게 꿈과 희망의 격려사이자 그들의 신앙적 주문(呪文)이였다.

온 가족이 끼니를 굶더라도 학교를 보내고, 전 재산인 논밭과 소를 팔아 대학을 보내고, 밤새워 일하더라도 자식을 도시로 공장으로 보내며, 온갖 아픔과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내일 떠오를 태양을 꿈꾸며, 오직 가난의 굴레를 벗고 이른바 출세라는 이름의 용이되려는 희망봉에 모든 삶을 걸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 누구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거나 날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최근 보도를 보면 '노력만으로 개인의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부정적 답변이 1994년 5,2%에서 2006년 46.7%, 2015년엔 62.2%로 20년 동안 12배로 늘어났으며 30대의 경우 2006년 30%에서 2015년엔 60%로 갈수록 계층간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주병기교수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이란 논문에서 부모의 학력과 소득분포 자녀소득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며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나기 어려운 정도를 수치화 해 이를 '개천용 지수'로 명명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에는 0.2였으나 2013년에는 0.35로 13년 동안 한국사회는 17.5배나 더 불평등한 사회로 변화되어 부모학력이 가장 낮은 집단(중졸이하) 출신이 소득상위 10%에 진입할 확률이 그 만큼 어려워져 오늘의 한국사회는 이른바 개천에서 용이 나올수 없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승자독식(勝者獨食) 사회의 짙은 사회적 그늘에서 비롯되고 있다.

승자독식을 누려본 그 달콤함의 경험은 정말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조차 힘든 절정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갈망하게 된다. 무소불위, 무소부재, 부익부 빈익빈, 유전무죄 무전유죄, 내로남불, 갑질사회로 이어지는 승자독식의 유혹이 천박한 놀부의 욕망을 여지없이 충동질한다.

그 욕망은 승자독식으로 얻은 전리품격인 상류 신분계층의 상속이나 대물림을 거의 본능적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방법은 사교육을 통해 자녀들을 이른바 명문대학에 진학시켜 돈과 명예와 지위와 권력의 상층부에 진입시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휘어잡는 일이다.

문제는 그러한 명문대학에 개천의 흙수저들 입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데 있다. 60, 70년대는 물론 80년대까지만 해도 공교육이 어느정도 살아있고, 대학별 입학시험만으로 신입생을 뽑는 덕택에 명문대생의 절반이상을 개천의 흙수저들이 차지할 정도여서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배 전 충주시의회 의원
최근배 전 충주시의회 의원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명문대학의 경우 소득상위 20%내에 드는 고소득층의 자녀비율이 46%로 비명문대학의 25%보다 배 가까이나 높다. 또한 61%가 부모 모두 4년제대졸 이상의 자녀들인 반면 부모의 학력이 고졸이하인 경우는 거의 없어 고소득,고학력 부모들의 명문대 대물림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교육이 개천에서 용이나는 통로였지만 이제 교육이라는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는 전설이 되어가고 '놀이와 잠은 학교교실에서, 공부는 학원에서'라는 말이 현실화되어 개천의 흙수저들은 점점 꿈도 희망도 잃어버린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게 세상의 눈에 비친 오늘의 사회이다.

노력으로 개천에서 용이나는 사회가 막을 내리고 금수저로 태어난 이들만이 용이되는 사회야 말로 재앙이 될것이라는 우려가 나만의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