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청주시는 1500년 질곡의 역사를 간직하면서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창의적인 문화원형을 만들어 왔다. 어둠이 가고 새벽이 올 때마다, 아픔의 마디와 마디마다 맑고 향기로운 청주정신, 생명정신으로 세상을 비추는 문화의 창이 되고자 했으며, 예술의 정신을 꽃피우려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청주시가 생명도시라는 사실은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 담겨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이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생명정신을 기반으로 한 금속활자본 직지도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했다. 세종대왕은 초정행궁에서 한글창제의 과업과 함께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치며 생명과 문화융성의 가치를 펼치기도 했다. 절멸위기의 두꺼비 집단 서식지를 시민의 힘으로 살려내고 생명문화의 피운 곳도 청주다.

어디 이뿐인가. 뱃속의 열 달이 생후 10년보다 중요하다는 태교신기는 청주사람이 저술했고, 조선의 베스트셀러 명심보감도 청주에서 인쇄되었다. 생명윤리와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원향약 역시 청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단재 신채호, 의암 손병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자주독립과 생명운동을 이끌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같은 문화적 환경을 기반으로 청주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도시로 성장하였으며, 오송 바이오, 오창 생명농업 등의 생명자본 도시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사계절 아름다운 색과 결과 향으로 가득한 가로수길을 비롯해 곳곳에 생명의 가치를 온 몸으로 만날 수 있는 숲과 호수와 마을이 살아있어 대지의 노래를 부르며 삶의 향기를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자랑이자 기쁨이다.

수많은 공연장과 박물관·미술관, 그리고 크고 작은 도서관 등에서는 춤과 노래와 전시와 퍼포먼스의 감동이 쉼없이 전개되고 있고, 책읽는 소리로 가득하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학인, 미술인, 공연예술가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크리에이터 이어령은 청주를 '생명문화도시'라며 청주가 하면 세계가 할 것이고, 청주가 하지 못하면 세계 그 어느 도시에서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웅변했다.

그렇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잘못된 정책결정은 고스란히 지역과 시대와 역사에 상처가 된다. 최근 청주가 미세먼지 도시, 환경오염 도시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이 도시공원 일몰제에 따른 사회적 문제로 시끄럽다. 도시공원 민·관 거버넌스는 구룡산과 매봉공원 등을 보존하고 생명의 숲을 가꿀 것을 제안했지만 청주시는 민간개발을 선택했다. 공공개발과 보존을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재원부족과 사적 재산권이 이유였다. 언제나 그랬다. 청주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보수적인 행정에 머물고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일에 머뭇거린다. 민관협치와 거버넌스를 외치면서도 일방적이다.

묻고 싶다. 시민의 생명권이 우선인가. 재산권이 우선인가. 도시가 급속도로 팽창되면 생활은 편리하겠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시, 살기좋은 도시는 숲이 많고 물이 많으며 문화로 물결친다. 불행하게도 청주는 숲도 없고, 물도 없다. 문화도 없다. 이벤트만 난무한다.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

뿔난 시민들이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전개키로 했다. 1인 피켓시위를 전개하고, 십시일반으로 구룡산을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전국의 생태 환경 전문가들도 잇따라 시민의 뜻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사람에게도 여백이 있어야 삶의 향기가 나듯이 도시도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 여백은 숲과 물과 공기다. 도시를 아파트로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부려놓고 낮고 느린 도시, 여백이 있는 도시, 사람 향기 가득한 도시를 만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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