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라는 존재
'나비'라는 존재
  • 중부매일
  • 승인 2019.05.08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석교사 이야기] 이태동 음성 감곡초

꽃 피는 4~5월이 되면 제법 산과 들에서 나비를 볼 수 있다. 만물이 생동하고 곤충과 새들이 주변을 화려하게 수놓을 때 팔랑거리는 나비 한 쌍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역설적이지만 아마도 우리는 약간의 두려움과 또 다른 환희와 맞닥뜨릴지 모른다. 자연의 순리로 얻어진 평화로움, 그 순간을 깰까봐 조바심이 나겠지. 또한 설렘과 고귀함으로 숨 쉬는 낭만의 시간을 곧 어떻게 담아낼까 행복한 고민도 시작되겠지. 어린 시절 '나비 따라 3만 리'를 무모하게 감행한 적이 있다. 꽃에 앉았다가 금방 어떤 힘에 이끌려 날갯짓하며 짧은 시간 초능력으로 '나'와 '자연'의 경계를 들었다놨다하며 과시하던 그 존재에 대해 한동안 정신 팔려 어디론가 걸어갔던 추억이 있다. 꿀을 먹거나 수분을 하는 행동 그리고 그들의 단아한 모습에 반해 살금살금 다가가 날개를 과감하게 잡았던 기억 등등. 몰론 대부분 나비 잡기에는 허탕 치기 일쑤였지만. 요즘같이 나비 보기 드문 때에는 더욱 슬프고도 기쁜 기억들이다. 나비는 앉을 때 날개를 접는데 날개를 세우는 꼴이 된다. 특이하게도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나비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상황은 늘 정반대다. 그들에게는 곤봉이나 갈고리 모양의 우수한 더듬이가 있고 뛰어난 시각(눈)으로 먹이와 적, 아군을 구별하며 짝 찾기 행동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날개가 잡히면 비늘가루가 있어 잘 미끄러진다. 천적들이 나타났을 때 최소한의 희생으로 시간을 벌라는 생존 전략일지 모른다. 빠른 듯 빠르지 않은 나비, 느린 듯 느리지 않은 나비를 따라가며 밭둑, 논둑길에서 자주 넘어지곤 했다. 나비에 대한 지극한 나의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 오너라"
"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봄바람의 꽃잎도 방긋방긋 웃으며 "
"참새도 짹짹짹 노래하며 춤춘다"

이태동 음성 감곡초 수석교사
이태동 음성 감곡초 수석교사

한 바탕 동요 '나비야' 노래를 부르면 가슴이 후련해졌다. 못 잡은 나비에 대한 안타까움도 사라지고 나비를 달래며 주변 환경을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 온 나를 보며 "작은 곤충도 다 살아가기 마련이야, 자연의 이치지." 명쾌한 정의를 내려 주었다. 당시, 나는 막연히 화려한 날개에 현혹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에만 동경심이 컸던 것 같다. 나비는 나무나 땅 속에서 부화해 먹이와 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나무로 올라간다. 네 번의 탈피를 거쳐 번데기와 성충으로 태어난다. 비 올 때는 나뭇잎 뒤쪽에서 비를 피하고 추울 때는 땅 속이나 나무 틈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을 꿈꾼다. 나비로 성공할 확률은 겨우 5%정도며 나비가 되어 대략 15일~20일 정도 살다 생을 마친다고 한다. 나비는 주로 낮에 활동하며 숲 속 주택가에서는 담장과 울타리를 넘나들며 넓은 세상을 편견 없이 꽃 피우며 꽃 피울 준비를 하며 산다. 우리의 교육 이념과 철학도 다음 세대가 이끌어갈 무대를 만드는 일이다. 허물을 벗고 나오는 나비처럼 우리 교육의 뒤안길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가꾸어야 하겠다. 꽃과 열매가 풍요롭게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활동으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