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승권 청주시 문화예술과 주무관

5월 푸르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아래 짙어가는 녹음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건강히 키워주신 덕분이다. 내가 부모가 돼 보니 아이를 기르는 매 순간마다 가장 좋은 것은 못해줘도, 뭐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해 주고 싶고 행여 자식이 아플까 봐 가슴 졸이며 살게 된다. 옛날 우리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마음도 이러하지 않았을까. 청주의 어머니가 지은 '태교신기'와 '반찬등속'에서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태교신기'는 사주당 이 씨(1739~1821)가 지은 책이다. 이 책을 왜 지었을까? 아이를 건강히 가져 잘 낳아, 바르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크고 후손들도 그러하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사주당은 청주 서면 지동촌에서 태어나 학문을 장려하는 부모 아래에서 사서삼경을 섭렵했다. 사주당 이 씨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출가해 아이를 낳아 기른 과정을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들 유희를 낳고 세 딸을 출산한 경험과 각종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태교 서적인 태교신기를 지은 것이다. '자식은 피로 말미암아 이뤄지고 피는 마음으로 인해 움직이므로 그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식이 이뤄지는 것 또한 바르지 못하다'라는 문구는 태교의 중요성과 임산부의 마음가짐을 유교적으로 가르치는 내용이다.

집안사람의 주의할 점까지 책 속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뱃속 아이에 대한 사주당 이 씨의 세심한 사랑이 느껴진다. 청주시는 사주당 이 씨의 마음과 태교의 중요성이 전국에 확산될 수 있도록 사주당 태교랜드 조성과 태교신기를 접목한 콘텐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 임신과 아이에 대한 고마움이 전파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 다른 한 권의 책 '반찬등속'은 약 100여 년 전 청주 상신동에서 진주 강 씨 집안 며느리가 쓴 한글 조리서이다. 책의 앞표지에는 '계축납월이십사일-1913년 12월24일'이라는 연도 표기가, 뒤표지에는 '청주서강내일상신리(淸州西江內壹上新里)'라고 지명이 표기돼 있고, 편지글 형식의 '아버님께 글을 올리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 간기는 적혀 있지 않지만. 당시 상신동 집성촌의 진주 강 씨 집안의 며느리가 쓴 것으로 짐작한다. 반찬등속에 나온 조리서 총 46가지 중 음식을 만드는 법에는 김치류·짠지류·떡류·과자류·음료·술 등 다양한 종류가 담겨 있고, 바다가 없는 청주에서 조기·북어·문어·홍합 등 해산물을 재료로 쓰는 조리법도 많이 나오고 있다.

신승권 청주시 문화예술과 주무관
신승권 청주시 문화예술과 주무관

또한 책에는 '사람은 모두 주옥을 좋아하는데, 나는 어진 자손을 좋아한다'라는 명심보감의 문구가 적혀 있어 자손들의 올바른 삶을 바라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다. 반찬등속 책자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청주의 뿌리가 있는 음식으로 복원·개발되고 있다. 앞으로 청주를 넘어 한식의 세계화에 그 어느 자산보다 가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길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적 제약과 인식의 틀을 깨고, 끊임없는 학문적 수양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책을 지은 사주당 이 씨와 강 씨 부인의 아름다운 반란, 걸 크러시(girl crush)의 시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1천500년 고도의 역사 문화도시 청주에서 조선시대 여인의 보물인 태교신기와 반찬등속이 찬란히 빛날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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