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나에게는 울다가 웃었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70년대 초, 중학교 2학년 영어 시간은 긴장과 공포의 3천초 였다. 그때그때 바뀌는 혹부리 선생님의 독특한 지명엔, 철저한 예습 아니면 걸리지 않는 재수를 기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겨울방학이 왔건만 무지막지한 숙제 때문에 방학은 방학이 아니었다. 시골 고향집으로 들어가서는 방학 내내 영어 단어 공부만 했다.

개학이 됐는데 숙제를 안 가져가 혹부리 선생님께 손바닥을 이를 악물고 맞았다. 주말에 집에 가서 2천장은 족히 될 16절 갱지를 전부 싸들고 와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고는 서러움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미련한 놈아 말을 하지…, 그거 놓고 가!" 며칠 후 방학 과제물 전시회의 수북이 쌓인 종이에는 최우수의 금빛리본이 달려있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외국인들에게 보디랭귀지와 함께 필요한 의사소통을 어설프게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돌아가신 영어 선생님 덕분이다.

나는 외국인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비행기 옆자리에라도 앉게 되면 지루함도 잊게 된다. 짧은 영어나마 간간이 아내의 도움도 받고, 무엇보다 자신 있는 웃음도 있으니까. 단어를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외국인 앞에서는 입이 안 떨어진다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장농영어'라고 놀리기도 한다. 언젠가, 외국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본 후배가 "형, 이게 돼?" 하기에 "응, 돼. 하면 돼!"

만나는 외국인마다 일본인 아니면,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K팝 덕분인지 젊은이들은 KOREA를 알지만 그 외는 한국을 거의 모른다. 그래서 스마트폰에서 지도를 켜고 '1988 서울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South Korea에서 왔다며, 가지고 간 초코바도 주고 함께 사진도 찍는다. 우리도 이제 세계 12위 경제대국 답게 나라의 위상도 국격도 높여야 하겠다. 그놈의 시험과 입시위주의 영어교육 덕(?)에 중·고등학교 6년 동안이나 공부하고도 외국인과 대화조차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고 잃어버린 6년이 분하기도 했다.

15년전 아들 녀석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아빠, 동생은 영어학원 꼭 보내주세요. 다른 과목은 혼자서도 할 수 있었지만 영어는 혼자 힘들었어요." 50여년전 미군들에게 "기브 미 초코렛!" 하던 사람들은 서양인을 만나면 괜스레 움츠러들기 십상인데, 외국에서 만나는 우리 젊은이들은 멋있고 대견하다. 세계인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견문을 넓히는 그들의 당당함은 선진국·선진국민이라는 자부심, 최고의 정보화 실력과 외국어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외국어 하면 외교관이 생각나고 외교관하면 떠오르는 두분이 있다. 거란의 내침 때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켰을 뿐 아니라, 여진을 몰아내고 지금의 평북 일대 국토를 완전 회복하여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외교관으로 외교안보연구원에 동상이 세워진 고려인 서희와, 고등학생 시절 존F.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외교관이 되어 결국엔 유엔 사무총장까지 지낸 충북인 반기문이다.

2017년에 개봉됐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가 생각난다. 어려서 미국에 간 남동생과 통화하고 싶고, 미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운 할머니 이야기다. 영화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중의적 표현으로, 하나는 "I can speak English."의 뜻이고 또 하나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증언'의 뜻이다.

미 하원 청문회에서 할머니는 자신있게 말한다. "I can speak!" 6년을 공부한 우리 누구나 '영어울렁증'만 벗어던지면 "I can speak English."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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