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맛있게 빚어내 지친 삶에 위로 건네는 백발청춘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환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91세에 시낭송하는 소년소녀 김재택 홍정순 부부가 그 누구보다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박경리의 시 '어머니'를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힘주어 낭송하는 백발의 한 노인. 그런 그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딸과 또 멀리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한 남자. 바로 그의 남편이다.

백발의 노인과 그를 지켜보는 한 남자는 올해 91세가 된 김재택 홍정순(청주시 오창읍) 부부다.

이들 부부는 충북재능시낭송협회(회장 최춘호) 회원으로 활동하며 시낭송을 통해 긍정에너지와 행복을 얻고 있다.

부인인 홍정순 여사는 3년 전부터 시낭송을 해왔고 남편인 김재택씨는 지난주 오창읍 즐거운 청춘노인대학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다.

이들 부부가 낭송을 할때 터져나오는 박수는 우레와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청년 못지 않은 힘있고 청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와 감정표현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들은 고령의 나이에도 이런 목소리로 시가 내포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바로 홍 여사가 충북을 대표했던 우리나라 웅변 1세대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2남 4녀에게 모두 웅변 유전자를 물려줬고 장녀인 김승회(65)씨도 전 충북웅변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충북재능시낭송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둘째 김순회씨도 시낭송가이자 동화구연 강사로 활동중이며 셋째 김설회씨도 미국 뉴욕의 한 사찰에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스피치와 웅변을 가르치는 등 웅변인으로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특시 홍 여사는 학창시절부터 문학소녀로서 시는 물론 옛 고전까지 섭렵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 시집와서도 책을 읽으려 했지만 시집살이 하며 책 읽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밤늦게까지 호롱불을 켜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시어머니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앞치마로 불빛을 가리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호호."

머리가 유난히 명석하고 기억력이 좋다는 홍 여사는 그때 많이 읽었던 책 때문인지 노인대학에서도 대답 잘하는 모범생으로 소문나 있다.

지난주 데뷔한 김재택씨도 서예와 한학과 한시에 능한 능력자로 알려졌다. 노래도 수준급이라는 김 씨는 시낭송에 대해 "노래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일 도서관을 찾아 1시간 정도 신문을 본다는 김씨는 신문에 실린 시를 읽으며 마음속으로 읽고 그동안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던것이 떨림없이 데뷔한 비결이기도 하다.

그동안 김씨는 홍 여사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해 시낭송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해왔던 것도 한 이유이기도 하다.

19세에 만나 72년을 해로한 이들 부부에게도 이런 행복한 날이 없을줄 알았다는 시절이 있었다.

결혼한지 얼마 안돼 발발한 6·25 전쟁으로 군 입대를 하게된 김씨. 이후 홍 여사는 김씨의 사망 통지서를 받게 되고 꽃같은 나이에 미망인으로서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이후 4년이 다 돼서 가까스로 포로 교환 조건으로 죽은줄 알았던 남편이 살아 돌아와 2남 4녀의 자녀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김재택 홍정순 부부와 장녀 김승회씨가 손하트를 하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 이지효

홍 여사는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연신 웃음을 보였다.

장녀인 김승회씨는 "가족여행을 자주 가는데 차에 타자마자 엄마가 노래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충북재능시낭송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김승회씨는 부모님과 함께 협회에서 1달에 1번 목요 시낭송을, 3개월에 한번씩은 찾아가는 시낭송을, 또 정기발표회를 통해 시낭송을 즐기고 있다.

김재택·홍정순 부부는 이제 91세로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 새로운 시를 암송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지만 딸들이 옆에서 읽어주고 녹음해주는 것을 반복해서 듣고 외워 즐거운 시낭송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이들 부부는 말한다. "사랑하는 당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고. 91세라고 믿기지 않는 것은 긍정과 행복, 감사의 마음가짐 때문인 것 같다.

김재택·홍정순 부부를 바라보는 충북재능시낭송협회 관계자들도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다른 어르신들에게 어떤 말 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다"며 "늘 감사드리고 지금처럼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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