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간 어떠한 개발 못해… 땅값도 헐값 수준"

청수공원에서 60년을 거주하고 계신 서광수(84), 고은아(59) 모녀. 유창림/천안<br>
청수공원에서 60년을 거주하고 계신 서광수(84), 고은아(59) 모녀. 유창림/천안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농기계를 보관하기 위해 자기 땅에 창고를 지었다가 1700만원의 벌금을 물고, 미끄럼 방지 차원에서 계단 위로 지붕을 올렸다가 철거 명령을 받았다.

도시공원 내 무허가건축물이라는 게 벌금과 철거의 이유였다.

지붕이 철거된 그해 아버지는 계단 위에 쌓인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부러졌고 3년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유언은 "끝까지 땅을 지켜달라"였다.

50년 동안 자기 땅에 어떤 개발행위도 하지 못한 토지주들이 있다. 도시공원으로 지정된 곳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토지주들의 얘기다. 그들은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이 코앞에 있음에도 정부의 공공주택지구 지정에 따른 강제수용을 염려하고 있다.

천안시 동남구 청수동 211-5번지 일원 24만여㎡ 규모의 청수공원은 1968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됐다.

도시공원으로 지정되면서 60여명의 토지주들은 일체의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특히, 도시공원 안에서 거주하던 토지주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의 시작이었다.

중부매일은 13일 청수공원에서 60년을 살아온 서광수(84), 고은아(59) 모녀를 찾아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어머니는 언제부터 이곳에서 사셨나?

23살에 시집을 와서 쭉 살았다. 이곳은 1968년 우리와는 아무런 상의 없이 도시공원으로 지정됐다. 처음에는 도시공원 지정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천안시가 매입을 하면 '그 돈으로 대토를 해서 농사를 지면되겠구나' 했다. 실제 직산에 땅도 알아봤다. 그런데 매입도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50년이 흘러갔다. 여기 땅값이 지금 15만원이다. 위치상 청수공원이 천안의 한 가운데 있는데 말이다.

 

-도시공원 지정 후 불편한 점은?

불편이 아니라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198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원래 있던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 방향으로 서서히 쓰러져 기둥으로 지지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에서는 건축을 허가하지 않았다. 도시공원 내에서는 개발행위를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시의 허가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집이 기울어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때 공무원들이 눈 감아줬는지 공사 후 집을 철거하라는 얘기는 없었다.

 

창고가 없어 농기계는 비닐과 천에 덮혀 마당에서 보관되고 있다. 유창림/천안<br>
창고가 없어 농기계는 비닐과 천에 덮혀 마당에서 보관되고 있다. 유창림/천안

-결국 원하는대로 집 개축을 한 것인데 생사의 문제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께서 도시공원 내 무허가건축물 때문에 돌아가셨다.

농사를 하면서 헛간이 필요했고,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집으로 들어오는 계단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특히, 겨울에 눈이 쌓이면 몇 번 미끄러진 경험이 있어 지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1년 창고와 지붕공사를 했다. 그랬더니 득달같이 천안시청 공무원들이 찾아와 벌금 1700만원을 부과하고 철거하라고 명령을 했다.

벌금을 안내면 매년 같은 금액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엄포를 하니 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결국 벌금을 내고 시설물을 철거했는데 그해 겨울 사단이 났다. 아버지가 집 입구 계단에서 눈에 미끄러져 고관절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으셨고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약 4년 동안 누워계시다가 2016년 돌아가셨다.

 

-지붕이 있었다면 돌아가지 않으셨다는 생각을 하는 것인가?

당연하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신 분이었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고 건강을 챙기신 분이다. 아버지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유언이 "땅을 지켜 달라. 1000만원 받기 전에는 팔지 말라"였다. 자신이 쓰러진게 도시공원 지정에 따른 건축행위 불가로 보신 것이고 천안시에게는 땅을 절대 뺏기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 유언이다.

 

-경제적 피해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약 1만4200㎡를 소유하고 있다. 도시공원 지정 이전 천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앙시장 건물을 매입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였다. 시가 바로 매입을 했다면 직산에 대토를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시의 매입은 이뤄지지 않았고 재산권 행사도 못했다. 재산상 손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주변에서는 토지주라는 이유로 공공의 이익 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남 일이고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한다.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50년 동안 내 집에 지붕하나 맘대로 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해 봐라. 창고가 없어 농기계에 비닐을 씌워 놓는다. 여기는 분명 내 땅인데 말이다.

 

고은아씨의 아버지가 눈에 미끄러져 넘어진 계단. 계단 위 캐노피 지붕이 철거돼 있다. 유창림/천안<br>
고은아씨의 아버지가 눈에 미끄러져 넘어진 계단. 계단 위 캐노피 지붕이 철거돼 있다. 유창림/천안

-정부가 LH를 통해 공공주택지구 지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바라는 점은?

내년이면 일몰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분명 일몰제 적용 전 도시공원을 지키자며 여론전에 나설 것이다. 그걸 반대하는 토지주는 또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공원에서 풀리면 자연녹지가 된다. 자연녹지 용적률은 20%로 나머지 80%는 지금 상태 그대로 남는다.

그런데 지자체는 용적률 20%를 두고 난개발이라고 호들갑이다. 그러면서 LH며 민간사업자를 등에 업고 공원부지의 70%를 기부채납 받겠다고 하고 있다. 칼만 안 들었지 토지주 입장에서 강도나 다름없다. 또 나머지 30%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나머지 70%가 공공의 공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특히, LH는 강제수용을 할 때 토지주에게 공시지가의 3배 정도를 준다고 하더라. 공시지가 15만원의 3배라고 해봤자 50만원 수준이다. 여기서 길만 건너도 평당 400만원~500만원한다. 50년 동안 땅값 헐값 만들어놓고 공시지가의 3배 준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할 줄 알았나.

바라는 점, 제발 그냥 가만히 놔둬라. 시민들 입장에서도 고층의 아파트가 위치한 공원보다는 지금 자연스러운 이 상태가 낫다고 생각한다.

 

공공주택지구와 도시공원 일몰제란?

공공주택지구는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해 정부가 마련한 후속 대책이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1999년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의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로 도시계획시설(공원) 결정 후 20년이 지나면 효력이 상실되는 제도다.

이들 장기미집행 부지를 도시공원으로 조성하지 못할 경우 2020년 7월이면 공원지정이 해제된다.

막대한 재정부담에 기초자치단체가 도시공원 조성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내놓은 게 민간공원 개발사업이다. 민간공원 개발사업은 민간사업자가 장기미집행 5만㎡ 이상 도시공원 전체를 매입해 70% 이상은 공원시설로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하고, 30% 범위에서만 공동주택과 상업시설 등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그러나 이 또한 민간사업자 특혜, 환경파괴 등 부작용이 뒤따랐고 정부는 민간사업자에서 LH로 눈을 돌려 LH가 사업성을 따져 도시공원과 공공주택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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