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 한 달 동안 다녔던 학원에 대한 기억은 30년을 넘게 마음의 빚으로 따라다녔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감사한 마음을 스스로에게 '약속'으로 옭아매어 두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오월이 오고 ' 스승의 날'이 되면 '약속'은 어김없이 생각나고 그것을 지키지 못한 마음은 추모하듯 그 시절을 회상하는 시간으로 대신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을 앞둔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방학 동안 청주 선생님 본가에 가서 학원을 다녀야겠으니 부모님과 상의해보라고 하셨다. 무어라 설명은 하셨지만 이를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내용인 즉 방학 동안 친구 두 명과 함께 선생님 본가에서 미술학원을 다니며 개학과 함께 실시되는 '충북 사생대회'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숙식은 선생님께서 제공해 주시지만 미술도구와 학원비는 본인들이 준비해 줄 것을 부모님과 상의하라는 것이다. 선생님과 어머니의 면담이 이루어지고 난 후, 나는 두 친구들과 선생님 본가로 들어갔다.

"가정 형편상 선생님께서 마련하라고 하신 금액을 준비해 드리지 못했어. 그러니 네가 다른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도와드리고 해야 된다 알았지?"

어머니의 말씀은 두 친구들에게 비밀이 되었고 선생님께서 사다준 미술도구를 들고 용화사 근처에 있는 학원으로 통학을 하였다.

하얀 와이셔츠를 반쯤 걷어 올린 미술 선생님과 함께 야외 스케치를 나가서 수채화를 그렸던 기억. 수강생 중에 유난히 보라색을 많이 사용해서 기억에 남는 남학생과 '용화사'를 오르던 가파른 계단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무얼 배웠는지도 모르게 시간은 갔고 사생대회에 나간 우리들은 아무도 입상을 하지 못하였다. 낙심한 담임선생님을 교감 선생님이 위로해 주시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은혜를 갚지 못하였다는 마음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머니와 나에게 약속을 했었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어른이 돼서 돈 많이 벌면 다 갚을 거니까"

미안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나 자신에게도 다짐을 하며 예쁘게 자란 모습으로 선생님을 찾아뵙는 상상을 하였다. 그러나 녹록지 않은 현실을 핑계 삼아 한해 한해 다음으로 미루곤 한 것이 30년이 넘게 지났다.

"선생님 절 받으세요"

10여 년 전 어느 날, 선물을 안고 오래전에 퇴직한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초등학교 6학년 계집아이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지켜지는 날이었다. 절을 하는 나도, 절을 받는 선생님도 울컥하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시는 사모님은 흐뭇해하셨다. 나도 결혼생활을 하고 보니, 그 당시에 계획에 없던 생뚱맞은 지출이 얼마나 속상했을까를 생각하니 사모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사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선생님께서도 오늘의 모습에 면목이 섰을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선생님을 찾아뵙고 오던 날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지웠던 마음의 빚을 내려놓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 오면 '선생은 있지만 스승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참 스승을 찾기 힘들다는 말이라서 참 씁쓸하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참 스승이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나는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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