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애(愛) 서다
오월 애(愛) 서다
  • 중부매일
  • 승인 2019.05.1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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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비슬산 30만평의 붉디붉은 참꽃 향연을 기대하며 도착한 산기슭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난 뒤였다. 천상화원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주변의 산 벚나무와 잔털벚나무, 단풍나무가 일제히 유록빛 기운을 선물했다. 산의 주인공은 나무도 바위도 아닌 신록이었다.

무엇보다도 유가사의 사찰 입구에는 일주문을 지나 법당 뒤뜰까지 거대한 고깔모자를 업어놓은 듯한 108 돌탑들과 용트림 하듯 구불구불 솟아 난 소나무는 흐렸던 마음을 금방 씻어주었다. 탑을 그저 쌓기만 해 놓은 것이 아니다. 탑 속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그의 일생이 있고, 세상 살아가는 법도가 첩첩이 쌓여 있었다. 때로는 성황당으로 모셔 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쌓으며 소원을 빌고, 염원하며 그 어떤 소망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의 신과도 같았다. 높은 탑 부근에는 작은 탑들이 무수히 많다. 손끝으로 툭 치면 무너질지언정 돌에 담긴 염원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유가사에는 오색연등이 꽃물결을 이루었다. 자신에게는 소원을, 다른 이에게는 기원을, 어떤 이에게는 마음을 담은 연등이 갖가지 이유를 안고 속삭이듯 매달려있다. 대웅전 법당 안에서는 승려의 예불소리가 방언처럼 들려왔다. 예불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스님이 불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그 소리는 연등을 타고 탑을 돌아 산사로 퍼져나갔다.

수도암을 지나 비슬산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로 도성암에 서니 엄숙한 마음에 몸가짐을 절로 보듬게 된다. 도성국사가 도를 깨쳤다는 도통바위를 지나 주능선에 오르니 평원지대가 펼쳐지고 서남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은 흩어진 시야를 한 곳으로 머룰게 했다. 집채만 한 바위가 산기슭에 군락을 이루듯 펼쳐진 바위 마당과 계곡 곳곳에 숨은 듯 자리 잡은 기암괴석이 눈길을 끌었다.

높은 산을 올라가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이 진한 감동의 썰물이 되어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오로지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찰나의 눈부신 빛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문명에서 멀어져 삶은 단순해지고 간결해져 감사한 마음뿐이다.

비슬이라는 산 이름은 정상에서 본 모습이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아 붙여졌다고 한다. 용이 승천했다는 비슬산 용연사에는 적멸보궁이 모셔져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적멸보궁란 부처님 몸체에서 나온 불사리를 모신 곳이니 석가모니 진신이 상주해 계신 것과 같다 하여 법당에는 별도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돌아가기가 못내 아쉬워 탑돌이를 하며 잠시 마음을 정리해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빈틈없이 조여진 돌덩이처럼, 높은 음만을 내던 내 자신이 수준이나 운운하면서 논리가 뭔지도 모르며 선악을 평가하며 잘 못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본다. 몇 바퀴를 돌았는지 내 안의 소란스러움이 잔잔해져 옴을 느낀다. 복잡한 사유의 시간이 지나고 흙냄새, 바람 냄새, 엄마의 냄새가 부드럽게 감싼다. 자연이 항상 자연스러운 것처럼, 운명도 자연스럽게 순응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생의 거친 돌무더기 속에서 아름다운 돌 하나를 가슴에 품은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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