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넝쿨 장미와 찔레의 외모는 비숫하다. 향기도 많이 닮았다. 피는 시기도 같다. 유년기의 아련한 추억 한 토막은 찔레와 장미가 피는 계절이면 떠오르곤 한다.

캐톨릭 재단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5월 성모 성월 이면 음성 감곡 매괴 성당에서는 성체 거동 행렬의식을 거행 한다. 청주 내덕동 성당 보다 역사가 깊은 탓으로 주교님이 큰집으로 오셨다.

집집마다 피어난 예쁜 장미꽃을 따다 성당에 봉헌을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애들 여섯명이 하얀 드레스에 화관을 쓰고 꽃바구니에 꽃을 가득 담아 뿌리며 주교님을 맞이한다.

그 때 내 머리에 쓴 환관은 찔레꽃몽우리와 꽃으로 장식을 했었따. 처음 입어보는 흰드레스에 귀걸이까지 단 내 모습은 미스코리아에 뽑힌 것만큼 축복이었다.

가슴시린 이야기다. 지금의 실내화(운동화)를 어머니께 사달라고 보채고 울었다. 얼마나 가난 했으면 어머니는 내 앞에서 운동화 한 켤레를 사줄 수 없어서 눈물을 보이셨다. 어렵게 운동화를 얻어 신었던 추억과 함께 해마다 찔래꽃이 피는 계절이면 어머니 생각이 간절해진다.

차안에서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를 처음 들었다. 가사말도 어쩌면 그렇게 찔레꽃 향기처럼 달콤하면서도 슬프게 들리던지 찔레꽃 노래에 핀이 꽂혀 흥얼거리며 부르고 또 부르곤 한다.

서른여섯의 청상이 되어 밤톨 같은 어린 삼남매에게 당신의 인생을 저당 잡히고 가난과 싸우며 살다 가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여왔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하지만 계시지 않으니 효도할 길이 없고 그저 송구함으로 가득한 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음을 한탄할 뿐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은 장미와 찔레 아카시 꽃향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흥건하게 젖어 있다.

아름다운 계절 5월엔 하얀 색의 찔레와 빨간 장미가 온 산천과 골목골목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있지 않은가. 바람이 불적마다 사알짝 스쳐오는 꽃향기는 사람들에게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호르몬을 생성시켜 아름답고 행복하게 삶을 꽃피우게 하고 있다.

물질 만능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에겐 요즈음 궁색한 것이 무얼까. 배우고 싶어도 가난해서 배울 수 없었던 허기진 삶이 무언지 알 수 있을까.

가는 곳마다 꽃으로 눈이 황홀하고, 먹거리가 풍부한 지금의 삶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하고 싶은 거 하다보면 하루해가 짧다. 아들딸들은 이해 못한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초록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들판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이는 날도 있다.

텃밭을 가꾸는 재미로 가지, 토마토, 고추, 고구마, 오이와 상추, 온갖 씨앗을 심으며 행복에 젖어 있는 나에게 아이들은 일하지 말고 가만히 쉬라고 하지만 고것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를 알기나 하는가,

온갖 시름 다 잠재우고 풀 뽑는 삼매경에 빠져서 있다 보면 행복감에 젖어 하늘에 희망을 띄우기도 한다는 것을 자식들은 모른다.

성모성월이요 감사의 달인 5월 가정의 평화를 간구하며, 5·18 희생자들의 넋처럼 피어나는 빨간장미 꽃을 보며 숙연한 마음이 든다. 텔레비전에 아옹다옹 싸움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 해온다. 신문을 뒤적이면서 입맛이 씁쓸해지는 세상을 평화스럽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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