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수필가

사람은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에서 긍정에너지나 부정에너지를 주기만하는 존재, 받기만 하는 존재, 주고받는 존재로 살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심리적 만족을 얻어 의욕과 흥이 생겨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심리적 만족감이 떨어져 기진맥진해지고 기분이 침울해지기도 한다. 불편한 관계에서 느낀 나쁜 감정들이 인생을 고갈시키지만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불만족과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며 삶을 이어간다.

류시화 시인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서 티베트 우화를 소개하며 관계의 범주에 속하는 '렌착'을 설명한다. "히말라야의 어느 골짜기에 수달이 사는 호수가 있다. 달 밝은 밤이면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수면으로 헤엄쳐 올라온다. 그러면 호숫가를 배회하던 올빼미가 재빨리 내려와 수달의 손에서 물고기를 낚아챈다." 이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를 티베트어로 '렌착'이라 부르고, 렌착은 '전생의 빚'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는 티베트 우화에 나오는 수달과 올빼미의 관계처럼 렌착으로 고착화된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데 에너지를 쏟으며 주종관계로 살기도 한다. 올빼미가 떠날까봐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수달처럼 관계가 끊어지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며 의존적인 관계를 고수하기도 한다. 올빼미가 수달의 노고를 당당하고 당연하게 가로채듯 불공평해 보이는 관계를 선택하기도 한다.

며칠 전 시외버스를 탔는데, 반대편 옆자리에 팔순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 부부가 앉았다. 부인이 남편에게 사탕을 건네주었는데 남편이 사탕을 싼 비닐껍질을 벗겨내 입에 넣자마자 부인이 순식간에 비닐껍질을 얼른 챙겨 좌석 앞쪽에 있는 그물망에 돌돌 말아 버렸다. 남편이 부인에게 버려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 부인이 자발적으로 비닐껍질을 버려주었다.

어르신 부부의 행동을 지켜보며 렌착이란 단어가 연상되었고, 어르신 부부의 관계가 수달과 올빼미의 렌착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달이 올빼미 소리가 들리면 최면에 걸린 듯 자신도 모르게 복종하듯, 남편의 사탕 비닐껍질을 챙기는 부인의 모습에서 존중과 존경의 대등한 관계 보다는 복종하는 관계가 느껴졌다. 남편의 표정에 미안함 보다는 당당함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나는 부인이 남편과의 관계가 렌착인지도 모르고 당연시하며 살아 왔을 수도 있고, 렌착의 고통을 힘겹게 겪으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오지랖을 떨었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수필가

렌착은 부모자식 사이에도 경계선이 불분명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부모가 어떤 자식에게는 도움을 받기만 하는 관계로, 어떤 자식에게는 도움을 주기만 하는 관계로 고착화되는 것도 렌착의 일종이다. 티베트 우화에 나오는 수달과 올빼미가 본성대로 살지 못하듯, 사람도 렌착 관계에 빠지면 자기답게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 렌착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심연에는 분노와 우울한 감정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렌착 현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렌착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서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 류시화 시인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가 렌착인지 진정한 애정인지 알아차리는 기준으로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자리하고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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