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무심코 서랍을 열었는데 주판이 손에 잡혔다. '어 이게 여태 있었네?' 고등학교 때 쓰던 거면 몇 년이나 지난건지. 타닥타닥 주판알 튕기던 소리가 새삼 그립다.

시골에서 아무 준비 없이 있다가 도시의 상업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미 다른 아이들은 주산을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주판은 상업학교 학생들의 문방사우였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주산, 부기, 타자 수업에 집중을 했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호산(呼算)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수를 듣고 주판에 놓아 셈을 하는 시간. '떨고' 하자 주판을 기울여 모든 알맹이를 아래쪽으로 떨어뜨리면 여기저기서 차르륵 차르륵 소리가 났다. '놓기를' 하면 가름대 위의 주판알을 검지로 주욱 그어 올림으로써 주판위의 상황을 제로상태로 만든다. 1만2천807원이요, 9천875원이요…, 죽 불러주다 마지막 숫자에서 '이면'을 하면 자신 있게 다 놓은 아이들은 손을 들고 답을 했다. 그때 손 든 아이들은 주산반 아이들과 나였다. 선생님이 지명한 학생이 숫자를 말할 때 맞으면 정산(正算)이라고 얘기해 준다. 일 더하기 일도 못하던 나였는데, 답까지 맞추어 정산이라고 외칠 때의 통쾌함이라니.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면 의도하지 않게 머릿속 주판으로 암산을 한다. 주판알을 손으로 옮길 때처럼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머릿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마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한 가지씩 담으며 그냥 아무 뜻 없이 암산을 했었나 보다. 요구하는 돈과 안 맞았다. 해서 다시금 따져보니 콩나물 천원을 만원으로 계산원이 입력을 하였다. 마트를 나오며 9천원 아꼈다고 혼자 웃었던 기억이 있다.

주판을 이용하여 계산시 주판의 위쪽은 검지로만 올리고 내리고, 아래쪽은 엄지로만 올리고 내렸다. 심심하면 주판을 놓았는데 주판을 잘 놓아서 답이 맞았다는 희열과, 엄지와 검지로 죽 그어서 제로로 만들 때의 쾌감을 즐겼다.

주산, 부기, 타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은행에 취직을 하였다. 지금처럼 전산으로 하는 업무가 아니라서 주판이 필수였다. 고객이 입출금한 내용을 적은 수납장 지급장 합을 낼 때, 계산기로 하면 답이 늘 달랐다. 주판이 제격이었다. 고객원장도 수기로 작성할 때였으니 주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였다. 1원이라도 틀리면 꼭 맞추어야만 하는 은행의 업무상, 집계가 끝나고 본연의 임무를 다한 주판을 가지런히 다듬을 때의 소리도 그립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는 숫자를 사용하는 계산방법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가감승제가 있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이것이 내게 이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 따질 때 우리는 주판알 튕긴다고 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손익계산을 해 보는 것이다. 더하기로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빼기가 될 수도 있고 분명 곱하기였는데 나누기도 되는 게 우리의 삶이다.

주판에 놓인 숫자가 클수록 내 재물도 그만큼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도, 무언가 좀 모자라고 손해 본 듯 하는 게 편한 세상일수도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계산기 주판. 주판이나 계산기로 산출할 수 없는 무한대의 숫자는 무엇일까? 주판을 보며 어렸을 적 양 발에 하나씩 묶어 스케이트 타면서 놀던 물건이라고 신기해하는 딸을 보며, 무한대의 숫자는 사랑이라고 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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