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여자 사람친구에게 고백했는데 실패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실패담이다.

'사람친구'? 현대 백과사전 스마트폰을 검색해도 안나온다.

도서관에서 여고생들에게 필담하듯 써서 물어봤더니, '사람친구'란 '사귀는 사이가 아닌 그냥 친구'라고 한다.

학채(學債, 글방 선생에게 보수로 바치는 곡식)로 초코바 2개를 건넸다.

예전에는, 애인이 아니고 그냥 이성친구라고 아무리 말해도, 남녀간에 친구가 어딨냐며 그렇고 그런사이 아니냐며 막무가내로 골려댔다.

라디오 프로에서 퀴즈가 나온다. "첫 키스 할 때 귀에서 울리는 소리는?"

"종소리!" 딩동댕이다.

느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고 물어볼 수도 없어 찾아봤지만 역시 안나온다.

'무조건 성공하는 낭만적인 첫 키스 장소 베스트10'에도 종소리가 들릴만한 성당같은 곳은 없었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인과의 사랑을 그린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처럼 하면 종이 울릴까?

읽고 있는 책에 '귀차니즘'이란 말이 나온다. 재미로 쓴 말이려니 하다 찾아보니 '만사가 귀찮아서 게으름 피우는 현상이 고착화된 상태'를 말하는 인터넷 신조어란다. 책 발행년도를 보니 2008년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는데 이래가지고서야 어찌 나잇값을 할까 싶다.

지금까지의 지나온 하루를 돌이켜보니 그다지 어리석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책읽는데 정신이 팔려 눈에 안약을 넣는다는게 독한 피부과 물약을 넣은 적이 있었다. 바로 흐르는 물에 씻고 안과에 가서, 손님들과 원장의 배려로 우선하여 급히 치료받는 바람에 다행히 큰 탈은 없었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의 일화가 생각났다.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별을 관찰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걷다가 웅덩이에 빠진 탈레스를 본 하녀가 "자신의 발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보지 못하면서 높고 깊은 하늘의 일을 알려고 하다니…, 쯧쯧쯧!"하며 비웃었다고 하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철학자의 하녀 역시 철학자가 다 되었던 것이다.

요즘 '지식의 이동'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인간에서 기술(인터넷)로, 노인에게서 젊은이에게로 계속해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된 처지가 처량하기만 하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지식이동의 악령이 밤마다 찾아와 괴롭힌다. 매번 예정된 열차와 비행기를 놓치고 만다. 식은땀만 흘린다.

"책은 내 마음속의 언 바다를 깨는 도끼와도 같다." 프란츠 카프카가 눈을 부릅뜨고 도끼를 던진다.

아파트 앞 도로에서 30대, 5~6세로 보이는 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엄마 천천히 와, 나 먼저 갈게."

"왜?"

"저기 오는 택시하고 대결하려고."

택시가 다가오자 아이는 쏜살같이 인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큰 길 신호등 까지는 40m 정도. 택시와의 경주에서 꼬마 아이가 이겼다.

아이의 짓거리를 눈치챈 택시기사는 아이의 뜀박질에 맞춰 속도를 조절했으며, 뒤따르던 차들도 천천히 이 대결에 동참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랑스레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를 향해 차에 탄 사람들은 창밖으로 엄지척을, 길 가던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5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아이의 의지와 용기는 여러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그래 도전! 고맙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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