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운전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차량 사고시 잘못된 과실비율로 속앓이를 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실제 과실과는 관계없이 사고유형에 따라 정해진 과실비율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런 경우 이 비율을 정해놓은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에 의구심을 갖게 되고 때에 따라 법의 판단을 물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 보험을 다루는 손보사 협회의 지난해 사고 과실비율 심의건수가 7만5천600여건으로 3년만에 74%나 증가했다. 이 모든 것이 과실비율 인정기준이 실제와 맞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문제점이 거듭되자 관련기관·단체에서 과실비율 산정기준을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법조계를 비롯해 각계 교통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마련된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일방과실의 대폭 확대로 볼 수 있다. 실제 자동차 사고에서 가만히 있었던 운전자에게 일부 과실이 있는 것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손보사들이 사고처리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다뤄온 잘못된 기준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있는 과실비율을 고친 것인데 개정 내용은 가해자에 대한 책임 강화, 불공평한 과실비율 수정, 모호하거나 미비한 기준 신설 및 개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과실비율 기준이 없는, 피해자가 피하기 불가능한 사고의 경우에도 피해자에게 일부 책임을 묻는 등 손보사에서 쌍방과실을 유도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례로 제시된 내용들을 보면 이같은 문제는 확연해진다.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다 발생한 사고나 노면표시를 무시한 채 좌회전이나 직진 등을 하다 난 사고, 좌회전 차로에서 직진차로로 끼어들다 일어난 사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고는 누가보아도 일방과실이지만 그동안은 쌍방으로 처리됐다. 또한 과실비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손보사 담당자들이 불합리하고 무리하게 관여할 여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부족하고 미비했던 과실비율 기준을 크게 늘린 점도 주목된다. 법원판례 등을 기준으로 교통시설물 등 20개의 기준을 새로 만들고 자전거나 오토바이 등과 관련된 기준을 현실에 맞게 개선했다. 최근 크게 늘어난 자전거도로나 회전교차로에서의 자동차사고시 과실기준을 자동차 일방과 진입차량 80%로 바로 잡았다. 또한 실제 도로위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오토바이의 무리한 우회전 진입에 따른 사고시 정상주행중인 차량의 과실비율이 70%에서 30%로 크게 낮아졌다. 한마디로 그동안 성긴 기준으로 허술했던 과실규정을 보다 촘촘하게 짰다는 얘기다.

이렇듯 피해자가 예측·회피하기 어려운 사고의 일방과실 적용은 사고현장의 분쟁 소지를 없앤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비일비재한 사고 다툼으로 인한 정체도 줄어들 것이다. 이와함께 자차 미가입 차량, 같은 보험사간 사고 등을 소송이 아닌 분쟁심의위에서 처리하기로 한 것도 적절하다. 다만 지난 2007년에 정해진 과실비율 인정기준을 12년이 지나서야 손본 것은 아쉽다. 사회와 기술이 급변하고, 도로위 상황도 하루가 다른 만큼 늦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앞으로는 적용대상이 작고 적더라도 발빠른 조치로 민원, 분쟁의 여지를 더 줄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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