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이야기] 김현식 제천제일고등학교

대학 졸업을 몇 달 앞 둔 내 머리 속은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안동을 벗어나자'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리 집으로 부터의 탈출'을 위한 온갖 궁리와 묘수 찾기에 몰두해 있었다.

과년한 여식을 밖으로 돌리는 것은 패가망신(敗家亡身)의 지름길이 되리란 조모님의 확고한 소신과, 여자의 행복은 그저 유능한 지아비 그늘에서 그 가문의 대를 잇는 자식을 출산하여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에 있다는 어머니의 부동(不動)한 철학이 족쇄가 되어 나는 늘 숨 막혔었다.

생각보다 쉽게 탈출 기회가 생겼다. 서울 근교에 우리나라 정신문화 연구계승을 위한 국학○○원을 때마침 개원하고 첫 석사과정을 개설하여 전액 국비로 인문학 재원을 양성 하겠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나는 한없이 고무되었다. 내가 그곳으로 진학해야할 필요충분조건이 너무나 완벽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수(有數) 사립학교 교사로의 추천이나 제안을 재고 없이 거절했음은 물론이며 오로지 그곳으로의 진학을 위한 내 노력은 100중 200이었다고 지금도 단언할 수 있다.

시험 당일 비장한 대천명(待天命)의 심정으로 시험지를 펼쳤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여전히 아찔하다. 흐릿하고 비뚤한 글씨로 단 한 줄이 적혀있었다.

'人生은 苦海인가?'

아 어쩌란 말이냐? ㅠㅠ

나는 말로만 듣던 혼비백산(魂飛魄散)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 단 한 번의 불명예스러운 '낙방' 사례로 남았다. 사건 후 특이한 습관 하나가 생겼다. 생각 정리나 중요한 결정이 필요할 때, 혹은 망중한의 여가에 그 해답을 새삼스럽게 작성해보는 별난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매번 인생에 대한 내 성찰과 경험은 얕고 논리는 비루하여 해답은 설득력이 없었다.

근래 '평가'는 교육계의 뜨거운 화두(話頭)로 부각되었다. '학습자 개개인에 내재된 다양하고 무한한 역량들을 어떤 방법으로 도출해낼 것인가' 하는 것이 그 고민의 출발이다. 평가의 중심을 '수험자'에 두고,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눈높이(수준)에 맞는 출제가 기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또한 출제자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수험자의) 철학인지, 지식인지, 역량인지에 대한 출제 의도를 수험자가 인지할 수 있어야 하며, 평가 척도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일명 논술평가나 서술형 평가라고 해서 막연하고 애매한 출제는 타당성과 공정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김현식 제천제일고등학교 수석교사
김현식 제천제일고등학교 수석교사

오랜만에 내내 인색하던 봄비가 내린다. 교사는 왜 '달인'이 없을까? 란 질문을 가끔 받는다. 올해로 34년 오롯이 근속한 내게 '당신은 왜 그 세월동안 달인에 이르지 못했는가?' 하는 은근한 질책도 깔려있음을 안다. 장담컨대 교사는 끝내 달인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교사는 어떤 상황, 어떤 대상, 어떤 방법(교수법)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며 무한(無限)의 적재량으로 시시때때로 물처럼 흘러야 하고 태풍처럼 변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조차 예견할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갈 소중한 자원(資源)들을 은밀히 품고 산전(山戰)과 수전(水戰)에서 장렬히 전사(戰死)할 그 순간까지 운명처럼 백의종군(白衣從軍)해야 할 것이다.

올해도 누구에겐가 미안하고 쑥스러워 숨고 싶은 '스승의 날'을 보냈을 무명(無名)의 영웅 모든 동료 교사들과 나에게 공자님의 '군자불기(君子不器)'란 말씀을 빌려 한없는 위로의 말을 보낸다.

교사불기(敎師不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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