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류연국 한국교통대 교수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위 질서를 위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노라면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시위대가 집단적으로 몰아치며 폭력을 행사해도 시위대에게 손을 댔다가는 경찰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우길 것이고 결국은 징계를 받을 수도 있기에 그냥 맞는다고 어떤 경찰은 말한다. 참 무기력한 경찰력이다.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는 경찰이 그랬다. 진압봉으로 후려치고 군화발로 밟고 때리는 건 보통이고 집단적 시위의 경우 독하디 독한 최루탄을 쏘아대고 퍼붓고 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도외시하고 오직 정권이 원하는 대로 시위를 진압하기만 하면 됐다. 당시는 경찰서에서도 폭력이 난무했다. 범죄 혐의가 있어 잡혀가면, 아니 끌려가면 으레 폭력에 시달리는 줄 알았고 없는 죄를 불어야 했으며 결국 억울한 옥살이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도 형편이 나아졌고 국민의 의식 수준도 몰라볼 정도로 향상됐다. 지금 거리로 나가보면 질서를 지키는 시민이 대부분이다.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소수지만 크게 보인다. 돌이켜 보면 지난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질서가 지켜지는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요즘 경찰서 민원실에 가보면 참 친절하게도 안내하고 일을 처리해 준다. 갑질을 일삼았던 과거의 경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혹시나 과거의 무지막지한 권력을 행사했던 시절을 향수처럼 그리워하는 경찰이 있을 리야 없겠지만 말이다.

경찰 비리가 뉴스로 휘날린다. 대부분 고위층과 연관된 부정부패이거나 부정한 돈에 욕심을 부리고 연루된 경우다. 권력에도 가깝고 큰돈과도 가깝기에 그럴 것이다. 시민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은 적은 인력으로 과부하가 걸려있다. 경찰 인력이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다. 2018년 경찰 1인당 담당 인구수는 437 명이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경찰이 담당하는 시민 수가 많다. 2015년에 미국은 430 명, 영국 423 명, 프랑스 311 명, 독일 301 명이었고 당시 한국은 451 명이었다.

2016년 우리는 국민의 힘을 보여준 촛불혁명을 경험했다. 전 세계가 우리의 시위문화를 극찬했다. 그 힘으로 지금의 정부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민주정부에서 벌이는 시위가 폭력시위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는가.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 현 정부가 더 반성해야 한다. 폭력적 시위에 대응하는 원칙과 법질서 수호의 권위를 포기해야만 하도록 한 정부의 지도층이 반성해야 한다. 경찰은 법질서 수호의 일선에 있는 존재다.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지키게 해야 한다. 공무집행 방해와 같은 공권력 무시에는 엄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어길 시 처벌의 강도가 지나치다고 여길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한 명의 경찰이 수백 명의 시위대를 상대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해야 하고 시민은 이를 존중해야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이다.

경찰 스스로 경찰을 '제복 입은 시민'이라고 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경찰 제복을 입고 있고 경찰임을 증명하는 경찰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 질서를 지키는 시민이라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질서 유지의 시작이다. 또한 그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경찰은 깊이 성찰해야 한다.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류연국 한국교통대교수

얻어맞는 경찰은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수도 없고 법질서를 수호할 수도 없다. 법을 어기는 자들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질서 파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추상같아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시민이 편안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얻어맞는 경찰을 바라지 않는다. 정부는 경찰을 얻어맞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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