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과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주소를 쓰고 한 글자 한 글자 알아갈 때마다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더니 다음에는 꿈이 열렸다

글자를 알아가면서 글을 알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고, 초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준비도 하였다. 그분들의 삶의 지혜는 글자만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절실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쓰는 연필을 깎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어르신이 문장을 읽어가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였다.

당신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한글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었지만 굳이 먼 곳까지 오는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경로당에 가서 한글을 모른다고 하면 무시당할까 싶어 눈이 나빠서 글씨가 안 보인다는 말로 둘러 대고는 시내로 글을 배우러 다니신 것이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한글을 배워 이름이라도 쓰고 더듬거리며 책이라도 읽을 줄 알게 되니 이제는 자서전을 쓰고 싶으니 봐 달라고 한다.

너무 멋있는 생각이라고 감탄하며 엄지를 척 올려주었다.

흔히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내 애기를 쓰면 책이 열권도 넘게 나온다'라고 한다.

정작 그 많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면 글재주가 없다고 손사레를 치거나, A4 용지 두 장을 채우기도 버겁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자서전'으로 묶어두는 꿈을 꾸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원하기도 하였다가 그래도 세상에 왔다면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서전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만한 업적이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 대기도 하고, 혹은 자서전은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쓰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자서전은 자기 인생을 기술한 것이다. 자서전을 씀으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고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고 변화된 삶을 다시 살아보는 중간 점검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비슷한 인생은 있어도 똑같은 인생은 없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한 권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들도 많다.

모 방송국에서 하는 '마이웨이'라는 프로를 보면서 화려하기만 할 것 같은 연예인의 삶 뒤에 숨겨진 생활들이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마이웨이'는 영상으로 담아낸 짧은 자서전인 것이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운명과 팔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내동댕이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자서전을 쓸 준비를 하는 어르신이 그래서 더 멋진 인생인 것이다.

매일매일 지나온 날들을 생각나는 대로 쓰라고 했다. 지나온 삶이 기억에 의해 재구성되는데 이에 따라 의식적. 무의식적인 변형을 겪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부터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 응원하였다.

한 토막 한 토막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가다 보면 한 권의 자서전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는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다.

어르신의 자서전이 '운디드 힐러'가 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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