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評判)'으로 바라본 경제와 인문학
'평판(評判)'으로 바라본 경제와 인문학
  • 중부매일
  • 승인 2019.06.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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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안창호 한국교통대 창업중점교수

지난 3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코웨이를 6년 만에 품에 안으며 재계(財界)를 놀라게 했다. 법정관리까지 이르게 한 기업을 다시 되찾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윤 회장의 숨은 일화가 알려지면서 세간에 이목을 끌었다.

윤 회장은 웅진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피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인은 책 한 권을 검사에게 가져갔다. 윤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긴 책으로 선처를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책 읽을 시간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잠재적 범죄자'가 쓴 책을 검사가 읽어줄리 만무했다.

그러자 이번엔 윤 회장이 진심을 담아 직접 편지를 썼다. 그리고 조사가 끝나던 날,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참 잘 사셨네요."

이례적으로 검찰은 웅진 사건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윤 회장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사재를 출연, 기업 정상화를 위해 실질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라며 불구속 기소 의견을 밝혔다. 이후 윤 회장은 구속을 면하고 기업 회생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초연결 사회로 진입하면서 '평판(評判)'은 의사결정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쇼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포함해 통화음성 및 CCTV 카메라 영상, 신용카드 기록 등이 주요 증거로 남아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고 문제가 있는 기업, 조직, 사람 등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대한항공의 오너리스크 문제부터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부처님 오신 날의 '거짓말' 등의 사건은 과거에는 이슈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실 확인까지 더해서 순식간에 진실이 알려지곤 한다.

또한 평판은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의 수단'이 되고 있다.

구인시장에서 평판은 주요한 평가요소다. 과거에는 인턴기간 동안 '조직문화와 잘 융화되는지', '역량이 과포장 된 것은 아닌지' 등을 살펴봤다. 하지만 포노사피엔스(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 처음 사용) 시대, 평판은 이러한 수고를 덜어줬다. 특히 경력직 채용시장에서 평판조회는 꼭 거쳐야 할 관문이다. 외국계 기업의 약 60%가 평판조회를 하고 있으며, 대기업(51%), 중소기업(38%), 공공기관/공기업(26%)도 일상화됐다.

기업 또한 평판관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구직자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한 구직구인 사이트에 따르면 인사담당자의 60%가 "면접 이후 SNS 후기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라고 한다. 높은 호응의 평판을 얻기 위해 '면접시간 엄수', '면접 교육' 등에 민감해 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반면, 과도한 평판관리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안창호 한국교통대 창업중점 교수.
안창호 한국교통대 창업중점 교수.

홍콩의 신용기업 렌도(Lenddo)는 대출자의 페이스북 친구 목록, 결혼 여부, 학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신용 점수를 계산한다. 이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의 신용도가 낮으면 자신도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 3'에서도 우리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드라마 속 세상은 '나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오직 상대가 부여하는 'SNS 점수'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잘못된 일을 했다면, 목격한 사람은 누구든 평판 점수를 깎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평판'이 점점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의 작은 말과 글, 행동은 이제 실시간으로 도시를 넘어 전 세계로 알려지기 까지 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오래전 나의 생각은 내 평판을 살찌울 수도, 바싹 마르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의 '평판'은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는 진짜 나의 '평판'은 몇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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