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슈퍼 공무원 - 글 쓰는 소방관 정준형
우리동네 슈퍼 공무원 - 글 쓰는 소방관 정준형
  • 신동빈 기자
  • 승인 2019.06.16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취업난 슬픔·임용시험 합격의 기쁨… 시로 풀어썼죠"
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정준형 소방관이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오창119안전센터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빈
작가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정준형 소방관이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오창119안전센터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청주동부소방서 오창119안전센터에 근무하는 정준형 소방관은 '꽃 피는 밤'이라는 시로 지난 03월 충북도가 주관하는 행우문학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임용합격 통보를 받은 날 밤, 자신을 위해 헌신해준 할머니에게 쓴 그의 시는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문학청년에서 불 끄는 소방관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이나 시나리오, 시 등을 쓰는 것을 즐겼지만 평소 클라이밍과 마라톤을 꾸준히 하면서 신체능력에도 자신 있었던 정준형씨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면서 이타적인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대학졸업을 앞두고 취업이라는 현실이 다가왔죠. 어떤 일을 해야 나와 가족이 행복할지 고민하던 중 소방공무원이 제게 딱 맞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길로 임용고시 준비에 들어간 그는 준비 8개월 만에 소방공무원 합격 통지를 받게 된다.

"하루 다섯 시간만 자면서 공부만 했어요. 집과 독서실만 오가다보니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 매개가 '시'가 되면서 틈틈이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지금 와서 그 시들을 읽어보면 그때 처한 현실이나 감정이 생생이 느껴지기도 해요"

 

◆'겨울편지' 그리고 '꽃 피는 밤'

정준형 소방관은 취준생 시절, 청년으로서의 솔직한 감정을 일상적인 표현들로 풀어냈다. 겨울 밤. 독서실에서 돌아오면서 쓴 '겨울편지'는 '곧 녹아내리는 눈'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이름 없는 오늘의 눈과 함께했던 이름뿐인 나의 하루. 그래도 마냥 쌓이기만 하는 건 아니겠지. 그저, 녹기만 하는 건 아니겠지. 눈이 녹아, 봄이 쌓이는 거겠지'

"취준생 시절 썼던 시는 되돌아보니 불안한 심리가 한 가득 표현돼 있었어요. 겨울편지라는 시도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썼는데 눈이 내려 쌓여도 며칠 뒷면 금방 녹자나요. 오늘 제가 공부한 내용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필요 없는 지식이 돼 버리니까, 눈처럼 녹아내려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그래도 집 가는 길에 저를 위해 비춰주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언젠가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쓴 시에요. 정말 힘든 시기였지만 좋은 추억이 있는 시이기도 하죠."

겨울편지가 막막했던 취준생의 심정을 표현했다면 '꽃 피는 밤'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마음껏 노래한 시였다.

"꽃 피는 밤은 소방공무원 합격 통치를 받은 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쓴 시에요. 자취방 앞에 핀 능소화를 보고 '아 나도 저 꽃처럼 이제 결실을 맺고 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상투적인 표현에서 시작된 시이기도 하죠"

<꽃 피는 밤>

숨을 죽이고 
하루하루 피어 오는 꽃을 세어 봅니다
어머니, 남에게 당신의 슬픔을 감추던 날
제 꿈은 당신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꽃은 무엇을 위해 피는 걸 까요
담장 위의 저 능소화보다
더 고요하게 밤비가 내립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고
아무런 말도 할 수 가 없습니다
어머니, 제 꿈이 당신의 행복이길 바랐을 때
사실 나의 꽃은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해주었고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었습니다
주름 가득한 당신의 얼굴
그 위에 더 큰 주름으로 당신이 웃습니다
나도 웃습니다


정 소방관은 겸손하게 자신의 시를 소개했지만 그 안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 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저를 보살펴주신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어요. 언젠가 할머니의 자랑이시던 외삼촌이 돌아가셨는데 지인이 외삼촌 안부를 묻자 얼버무리시던 할머니 모습을 봤어요. 그때 이제는 내가 '할머니의 자랑이 돼 드려야 겠다' 생각했는데, 소방관이 됐으니 조금은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어서 행복했어요."

 

◆글 쓰는 소방관

"작가 정준형보다는 선배들처럼 훌륭한 소방관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경험을 쌓고 난 후 소방관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소망입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정식으로 등단해 글을 쓰고 싶다는 정 소방관은 자신의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제가 쓴 글이 모여서 책이 되고 출판이 된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아주 먼 이야기지만 이러한 상상이 현실이 되면 그 수익금으로 학교를 세운다거나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