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19.6.6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제64회 현충일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19.6.6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가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다. 정파적인 해석까지 거론할 생각은 없지만 이번 문 대통령의 추념사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일견 현충일을 맞아 애국과 보훈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통합된 사회를 주창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광복군 얘기를 하면서 꺼낸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이제껏 그랬듯이 애써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현충일에 어울리지 않기에, 이런 방식으로는 그가 언급한 '통합된 사회'로 갈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먼저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는 없다'는 문 대통령의 인식에 동의한다.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인 것이다. 따라서 애국을 놓고 이념을 논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나라를 위한 일에 헛된 죽음은 없다'거나 '나라를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명예로운 일'이라는 말에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전세계 어느 나라, 어느 국민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도 많은 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추념사를 밝힌 현충일에 추모해야 할 상당수 분들이 6·25전쟁의 피해자라는데 문제가 있다. 국군의 뿌리인 광복군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꺼낸 김원봉이 북한군으로 공로훈장을 받은 6·25전쟁 말이다. 대한민국에 총뿌리를 들이댄, 동족상잔이란 비극에 책임이 있는 인물을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꺼낸 것이다. 그렇다고 김원봉이 일제강점기에 펼쳤던 무장투쟁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항일운동가이자 독립투사라는 점은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항일투쟁사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뚜렷하고도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항일투쟁에 큰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군으로 활동했던 꼬리표가 감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의 월북(越北)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당시 우리사회에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학계 등에서 논란이 일자 청와대측에서 흘러나온 '결국 북에서 숙청된 인물'이란 평가는 더더욱 말이 안된다. 그들 내부문제로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것인데 과거 행보를 희석하는데 이같은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뿐이다.

결국 문제는 잣대다. 공이 많아도 과가 크면 칭송은 안될 일이다. 분단의 희생자라도 과거의 흔적을 씻어낼 순 없다. 항일에 앞장섰지만 후일 매국의 낙인이 찍힌 많은 변절자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가. 어떤 의도에 치우쳤다면 그 잣대는 결코 공정(公正)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수도 없이 밝힌 공정이 허울에 그치지 않으려면 누구나 동의하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잣대가 필요하다. 과연 현 정부는 그런지 되돌아봐야 한다. 중도에 무산됐지만 김제동이란 방송인에게 비상식적인 대우를 하다 탈이 난 것을 보면 이런 지적이 나올만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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