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소통기록지 나눠주고 내용 적어 제출 지시

[중부매일 김금란 기자]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들어갈 내용을 학생들에게 미리 받아 '셀프 학생부' 논란이 일고 있다.

청주 A고교는 자체 문건인 '교사-학생 소통기록지'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내용을 직접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이 소통기록지는 진로활동, 동아리, 독서활동사항, 심화영어독해 등 과목별로 나눠져 있고,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내용, 창의적 체험 활동 상황, 수상 경력, 봉사활동,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쓰도록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진로·동아리의 경우 활동내용 중 특징적인 것과 활동을 통한 변화·발전 등을 사실에 입각하여 개조식으로 정리할 것을 지시했다.

심화영어독해과목은 발표 날짜, 형태, 특징, 과제, 참여, 태도, 효과 등 일반사항과 수업 및 발표와 관련해 읽은 책과 선행연구조사방법이나 탐구사례, 지식과 사고의 깊이가 변화된 내용 등 특이사항을 기록하게 돼 있다.

이 학교의 한 학부모는 자녀가 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을 대신 적어달라고 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얘기를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학부모는 사설 업체의 도움을 받아 소통기록지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다.

이 학부모는 "대학 입시와 직결된 민감한 생기부 내용을 교사가 학생에게 내라고 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A고교는 이것이 왜 문제냐는 반응이다.

A고교 관계자는 "요즘 학생들이 전공 관련 활동을 많이 하는데 선생님들이 100% 다 알 수 없다"며 "오히려 교사가 학생들에게 관련 내용을 적어오라고 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생활기록부를 직접 쓰는 경우는 비단 이 학교뿐만이 아니다.

청주 B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은 "선생님들이 귀찮아해서 시험 끝나면 학생들이 생활기록부를 작성 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일선 학교를 지도·감독해야 할 도교육청이 이 같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교육청은 지난 4월 도내 중·고교를 대상으로 생활기록부 관련 교육을 실시했지만 헛수고에 그쳤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어떻게 해서든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지침에는 서술형 항목에 기재될 내용을 학생에게 작성·제출하도록 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청주의 한 인문계고에서 교사가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생활기록부 내용을 적으라고 해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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