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동산 언덕에 자리 잡은 고층 아파트의 삼십층에 사는 초등생이 도심의 사십층 아파트에 사는 단짝친구네 집보다 더 높다며 말싸움이 벌어졌다. 서른과 마흔 중 어느 것이 더 큰 줄도 모르는 바보라며 상대방의 자존심을 긁는 친구에게, 우리 아파트에서 보면 사십층도 저 아래로 보인다며 등고선도 모르는 등신이라고 40층에 사는 친구를 모독하니 주먹이 오고 간다. 결말은 집에 와서 명판관 엄마의 한마디로 평정이 된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6·25를 겪지 않은 초등학생이 통일교육 강의를 듣고 나서 질문을 한다. 역사 속에서 전쟁이 나면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는데, 한국전쟁은 누가 이긴 것입니까? 아직도 휴전 중이라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긴장상태인데, 이제 그만 종지부를 찍고 어떤 형태로든 서로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하니 다른 학생들까지 '언제 전쟁을 했었지?'라고 수군거리며 의아한 표정들이다.

나라를 걸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국민(百姓)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싸워서 이겼다는 것은 전사자의 숫자와 파괴된 재물의 비교우위에 농사도 못 짓는 몇 평의 땅이 고작이다. 서로 피해를 봤으니 승자도 패자도 없다. 무모한 싸움에 소중한 목숨만 포화에 날려버렸으니 승산의 기약도 없는 도전에 도전만 거듭하느라 젊은이들만 사윈다.

살아있으면 구십이 훨씬 넘었을 작은 형이 그 전장에 나갔다가 첫 소식으로 전해온 전사통지서를 받았을 때 온 가족은 망연자실했고, 유해 도착으로 대성통곡 속에 장례를 치른 후 어머님은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들을 보며, '저애가 커서는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게 어서 빨리 평난(平亂)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하시던 평화염원 기도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그 말씀은 지금도 말라버린 내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세상에는 용서(容恕)처럼 힘이 센 것은 없다고 한다. 세월 지나면 다 잊힌다곤 하지만 대를 이어 품은 한이 용서가 되려면 대단한 용기와 현명한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의 강도 높은 분노도 삭여야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뼈를 깎는 아픔도 감내해야 하며, 자존감 덮고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곤경 이해하여 몸과 마음 다해 도와야(奉仕)하니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인실련 상임대표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마음(恨)을 이기는 것(克己)이기에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싸움에서 꼭 이겨야 한다면, 그래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면, 나를 포함한 우리가 평화롭기를 바란다면, 순전히 밑 가는 희생도 감수해야 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다 끌어안아야 한다. 상대가 하고 싶은 대로 허락하여 도전을 포기하게 하니 다 진 것 같은 내가 이기게 된다. 결단코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은 최하선책이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선책이라고 한다.

싸움도사가 죽기 살기로 쌈질만하다 힘이 다하니 수저 놓고 떠나면서 자녀들에겐 '제발 형제와 이웃 간에 싸우지 말고 우애 화목하게 잘 지내라.'는 명언을 남긴다.

"내 심혈관(心血慣)과 언행습(言行習)을 빠짐없이 물려받은 자녀손이 사람답게 구실하려면 삼대는 물려야한다는데, 부디 아비의 유언이 헛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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