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넘은 10대 소녀들의 경기력… 믿음의 결과죠"

39년만의 소년체전 우승을 차지한 일신여중 핸드볼팀 선수들과 성문호 감독, 여운석 코치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빈
39년만의 전국소년체전 우승을 차지한 일신여중 핸드볼팀 선수들과 성남호 감독, 여운석 코치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일신여중 핸드볼팀 명단 양처럼·박지현·차서연·정민지·이채은 이상 3학년, 김지아·김서진·조유희·이수연·이선미·이제은 이상 2학년, 김지선·김다인·김민지·김재은·박효빈·신지아·송예은·오채영·채민서 이상 1학년) /신동빈

[중부매일 신동빈 기자] 지난 5월 전북 익산시 일원에서 열린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기적의 드라마를 써낸 일신여중 핸드볼팀이 연일 화제다. 이에 중부매일은 성남호 핸드볼팀 감독에게 39년만의 대회 우승 비결과 일신여중 핸드볼팀 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감독의 고집과 선수의 열정 

"실수 하지 마, 끝까지 집중해" 39년만의 전국소년체전 우승이라는 역사를 쓴 성남호 청주 일신여자중학교 핸드볼팀 감독의 지도 아래 발을 구르며 공을 주고받던 선수들은 이내 거친 숨을 내뱉으며 주저앉는다. 이제 막 10대 중반에 들어선 소녀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들의 훈련 태도는 진지했다.

평일 오후 5시, 일반 학생들이라면 일과를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이지만 핸드볼팀의 훈련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선수들은 오전 7시께 학교에 나와 아침운동을 하고 수업이 끝나면 오후 7~8시까지 남아 훈련을 합니다." 

운동부도 열외 없이 학교일과를 모두 수행하도록 하는 일신여중의 교육방침과 성 감독의 고집 덕분에 종일 훈련이라는 특권(?)은 없지만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눈빛에는 남다른 열정이 묻어있었다.

"제가 가르치는 선수들은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이러한 습관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지도방식은 시간과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서 성과를 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지난 2015년도부터 일신여중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성 감독은 앞선 2번의 소년체전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전국 4강권에는 진입했지만 라이벌 세연중(당시 황지여중)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 대회 결승전에서 세연중에 승리를 거두며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39년 만의 우승

4강 진입을 목표로 대회를 준비한 성 감독은 대회 첫 경기(예선전)에서 진땀 빼는 승부로 진이 쏙 빠지게 된다. 

"대구 용산중이 첫 상대였는데 1학년 때부터 같은 멤버로 대회를 준비해 온 팀이라 만만치 않을 거라고 예상했죠. 하지만 결승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적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하지만 성 감독의 계획은 보기 좋게 빚나간다. 이 경기가 대회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경기로 기억됐기 때문이다. 

"짜임새 있는 용산에 휘둘리다보니 후반전 다섯골 차까지 벌어지게 됐어요. 작전타임을 소집하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하자고 강조했습니다. 다행히 경기 후반부 리드를 잡기 시작 했어요."

기쁨도 잠시, 종료 휘슬 10초를 남기고 용산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동점상황이 연출된다.

"10초 안에 한골을 넣어야 되는데, 상대가 반칙작전을 써서 공격시간이 5초가 남았어요. 페널티까지 가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골이 꼭 필요했죠. 그때 지현이가 2초 남기고 슛을 던져서 버저비터 골을 성공시켰어요. 정말 짜릿한 한 판 이었죠."

값진 승리를 쟁취했지만 이날 선수들은 극심한 체력소모를 하게 된다. 매일 경기를 치러야 하는 소년체전 특성 상 치명적인 부담을 앉게 된 것이다.

"다음날 바로 이어진 서울 휘경여중과의 8강은 실력 차가 확실했기 때문에 승리를 장담했는데 선수들이 후반 체력이 떨어지며 5골 앞서던 경기가 뒤집혔죠. 결국 페널티까지 가서 어렵게 승리했어요."

녹초가 된 선수들은 준결승전에서 전남 무안북중을 만난다. 

"다행히 이날은 생각한 대로 경기가 풀리면서 선수교체를 여유롭게 할 수 있었어요. 세연중과의 일전을 치르기 전 선수들이 한 숨 돌릴 수 있었던 거죠."

라이벌 강원 세연중과의 결승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태백 특유의 끈끈함과 많은 운동량이 우리를 힘들게 했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절대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3학년 학생들이 경기장을 찾아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줬기 때문이죠. 어린 학생들에게 이러한 지원은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경기력을 선보인 선수들은 이날 24대 21로 세연중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소년체전 우승은 4번째였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처음 해 본 것처럼 정말 행복했어요. 경기가 끝나고 나니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아이들과 끌어안고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말로 전하지 못한 마음

"대회 전 선수들에게 우승하면 일주일 휴가를 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지도자 생활을 해온 21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공약이었지만 동기부여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일신여중이 기독교 학교이다 보니 아이들의 생활 태도나 마음가짐이 바르고 성실해요. 함께 기도하며 힘든 과정을 이겨낸 것이 우승을 향한 밑알이 됐다고 확신합니다."

성 감독은 농담처럼 포상휴가에 대한 일화를 말했지만 그 내면에는 힘들게 훈련한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결과를 선물하고 싶어 한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민감한 시기에 작은 문제 하나 없이 따라와 주는 선수들이 너무 고마워요. 부족한 감독 밑에서 고생하는 선수들이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서로 믿으며 팀을 꾸려갔으면 좋겠어요."

체전 직전 둘째 아이 출산한 여운석 코치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여 코치는 지도자가 선수보다 더 고생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어요. 이런 방식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행복해요.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39년만의 우승이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