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 작가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오랜 역사를 품은 학교는 나무가 참 많았다. 꼭 작은 숲에 들어온 것 같았다. 특강을 마치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옆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벽에 큰 흑백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진 아래 1회 졸업사진임을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작은 한 장의 사진에 졸업생 모두가 모여 있는 듯했다. 졸업생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따듯함과 정겨움이 묻어났다. 각 학교마다 자랑거리가 많겠지만 한 장의 흑백 졸업사진이 이 학교의 자랑거리가 되었음 싶었다. 한참 졸업사진을 보다가 나의 졸업사진이 떠올랐다.

나의 초등학교 사진첩은 몇 장 안 되는 공책보다 작은 크기다. '추억'이란 글자가 쓰인 녹색 겉장을 넘기면 졸업기념 60회, 졸업년도와 학교이름이 나온다. 그 다음 장엔 학교모습과 그 위에 동그랗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사진이 담겨 있다. 다음 장엔 학교 선생님이 모두 계단에 서서 찍은 사진이다.

6학년 때 선생님들 얼굴은 모두 기억난다. 그리고 5학년 때 연필 한 묶음을 슬쩍 주신 선생님도 기억난다. 이어 1반부터 5반까지 한 반씩 찍은 단체사진이 있다. 단체 사진속 친구들 이름은 잘 모르겠다. 담임선생님이 중앙에, 왼쪽으로 남학생이, 오른쪽으로 여학생이 앉아있다. 딱 한 반만 남학생과 여학생이 섞여 앉아있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라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짝을 맞춰 무용을 하거나 하면 손을 잡기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나뭇가지 끝을 잡거나 고무줄을 잡았다. 선생님이 보시면 가만히 있다가 안 보시면 고무줄을 서로 잡아 당겨 손끝이 닿지 않게 했다.

같은 장소에서 졸업사진을 찍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반이 그 반 같다. 또한 사진 뒤로 학교 건물에 붙은 '국어 사랑 나라 사랑'이란 글자가 보인다. 한 쪽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던 살구나무도 보이고.

사진첩이 오래 되어 긁힌 자국도 있고 좀 뿌옇다. 하지만 1반부터 5반까지의 사진을 몇 번 보니 흑백사진이 꿈틀거리며 점점 칼라사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추억 속으로 가서 만나는 풍경은 늘 칼라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봄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던 연분홍 살구꽃잎이 떠올랐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엔 하르르 떨어지던 꽃잎들. 첫눈이 내릴 때처럼 두 손을 모아 떨어지는 살구꽃잎을 소중히 받았다. 계절이 지나 익으면 반마다 몇 알씩 나누어 주던 살구. 어쩜 이 살구의 기억 때문인지 해마다 살구꽃을 보거나 살구를 보면 그냥 좋다보단 미치도록 좋다.

요즘은 초등학교 동창생들끼리 밴드를 만들어 소식을 접할 수 있다. 한 번도 참석은 못했지만 가끔씩 모임이 있으면 올리는 사진을 보게 된다.

최근엔 한 친구가 멀리서 보이는 학교 사진을 밴드에 올렸다. 마침 내 1학년 때 교실이 보이는 사진이라 뭉클했다. 정말 많이 보고 싶었던 교실이었다. 그리고 등굣길이 보여서 반가웠다.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길 한 쪽으로 있던 탐스런 포도과수원도 생각나고 맞은편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던 교회도 그려졌다.

흑백사진은 칼라사진보다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신기하게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 추억을 선물해 준다. 슬프면 슬픈대로 기쁘면 기쁜대로. 또한 흑백사진은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참 바라보면 삶에 욕심 대신 순수함을 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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