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날이 밝으면 텃밭으로 나간다. 밤새 친구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고 불청객인 풀을 뽑는 일은 해가 떠 더워지면 마무리를 한다.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한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늙어 보일까, 내게도 꽃 새댁 시절이 있었다. 여자는 나이가 차면 시집가는 것이 법 인줄 알았다. 자식 낳고 잘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살다보니 머리에 서리가 내린 가을 여자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평생 교육원을 다니는 것도 시들해졌다. 유일하게 가끔 오후면 경로당으로 십원짜리 동전이 가득 든 지갑을 들고 마실를 간다.

정부에서 쉼터를 만들어 주어서 참 고맙다. 여름엔 시원하게 에어콘을 틀어주고 공기 청정기가 있어 쾌적한 쉼터이다. 쌀과 운영비를 지원을 해 줘서 부담이 없다. 그곳은 노인들의 놀이터이다.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십원짜리 고스톱을 치면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엄격하게 구경하는 이가 심판관이 된다. 더러는 훈수를 두다 핀잔을 받아 아옹다옹 싸움으로 이어지는 재미를 즐긴다.

우리 동네는 남자들이 적다. 아니 몇 없다. 특이하게도 할머니 할아버지 방이 따로 없다. 여자들은 열다섯 명 정도이고 남자는 다섯 명이다.

그 중 한 남자는 소주를 대(大)병으로 놓고 마시며 놀고, 두 번 째 남자는 막걸리 한 병은 성에 차지 않는지 두병을 옆에 놓고 오락을 즐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평생을 남편을 하늘 같이 섬긴 여성들이라 그런지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연출 된다.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취하게 마련인 것이 알콜이다. 남의 여자들에게 반말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당연하게 받아 드리는 할머니들이 문제다.

우리 동네 경로당 일을 글로 쓰게 되어 미안하지만 아마도 전국에 있는 시골 경로당이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난 생각 한다.

남존여비 사상에 길 드려진 할머니들의 행동은 참말로 "못 말려"이다. 지긋지긋 하지도 않은지 나와서까지 버릇을 고치지 못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남자들도 술이 먹고 싶으면 술집이나 자기 집에서 한잔 마시고 경로당에 와서 놀다 가는 것이 예의라고 본다. 자기 마누라도 아닌데 "술 사와라, 안주 달라" 명령하고 그 명령에 쪼르르 달려가 술사다주고, 안주까지 장만해서 쟁반에 올려 바치니 경로당 분위기가 엉망이 돼 버린다. 술에 취하면 남자들이 큰소리 '뻥뻥'쳐도 되는 자리인지 경로당은 무질서해진다.

대한노인회에 가보니 여인 천국인 경로당에 회장은 거의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양성 평등인 사회가 되려면 논밭전지 팔고 소 팔아서 공부시킨 자식들을 봐서라도 어르신들의 태도가 바뀌어야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제대로 된 양성 평등 시대가 올 것이다.

눈꼴 사나운 일들을 외면하고 슬그머니 일어나 텃밭으로 향한다. 싱싱한 상추와 조롱조롱 매달린 오이와 토마토. 딸기와 앵두를 따다보면 절로 힐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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