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현진 독자

사랑하는 아빠에게

2년 전, 제가 결혼하고 스위스로 가서 살게 되었을 때 아빠가 써주신 편지에 이제서야 답장을 하게 되었네요. 답장을 쓰는 게 참 많이 부끄럽고 어려웠어요. 사실은 아빠의 편지를 꺼내 읽는 게 힘들었습니다. 문득 잊고 살다가도 아빠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게 실감이 나서 도저히 다시 읽을 수 없었어요. 오늘 다시 아빠의 편지를 꺼내 읽다 또 코끝이 시큰해졌습니다. 언제쯤이면 아빠의 편지를 담담하게 읽을 수 있을까요.

아빠, 기억하세요? 네발자전거의 작은 보조 바퀴를 떼고 처음으로 아빠의 큰딸이 두발자전거를 타던 날. 아빠는 뒤에서 자전거를 잡고 제가 넘어지지않도록 중심을 잡아주셨어요. 한참을 달리다 뒤돌아보니 아빠는 저만치 멀리서 저를 보고 계셨고 덜컥 겁이 난 저는 울다 넘어졌어요. 그렇게 울고 있는 저에게 다가와 "항상 뒤에서 아빠가 잡고 있다고 생각해, 그럼 넘어지지 않고 잘 탈 수 있어. 그리고 너무 앞만 보면 안돼. 멀리 보고 귀를 기울여야해"라고 말씀해주셨던 아빠 덕분에 항상 자전거를 탈 때면 아빠 생각이 나요.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서 가끔씩 제 자신이 흔들린다고 생각될 때마다아빠의 말씀을 기억하며 자전거를 탑니다. 아빠의 소리들을 곱씹으며 페달을 구르다 보면 지혜가 생기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된답니다. 아빠가 그때 해주셨던 말씀들은 어쩌면 자전거 타는 법이 아니라 인생을 사는 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발자전거도 잘 못 타던 그때의 현진이는 아빠가 출근하고 사무실 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 무렵,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출근이 그리고 아빠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이른 시간에 출근하고 많은 구성원들과 조직생활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부딪혀 본 후에야 아빠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회에 나와보니 이 울타리들을 무너뜨리지 않고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어느덧 저 또한 부모가 될 나이가 돼보니 오랜 세월 자식들에게 희생만 했던 아빠의 시간이 해석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아빠는 저에게 생각만 해도 눈물샘이 터져버리는 무척이나 애절한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서현진 독자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공무원 생활을 하셨던 아빠였기에 '공무원'이라는 이름을 지운 아빠는 아직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편으론 이제야 온전한 나의 아빠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진흙 땅에 피는 연꽃처럼, 여름날 나그네의 쉼터인 고목처럼 묵묵하게 한 길만을 걸어오신 아빠. 이제부터 아빠의 새로운 이력서는 우리 가족과 함께 써 나가요.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아지겠지만 이젠 잘하지 않아도 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 아빠가 좋아하는 것만 하시길 진심으로 바랄게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엔 아빠는 여전히 청춘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타인의 귀감이 되어 직장동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셨던 아빠의 자식으로 살아갈 수 있어서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빠의 지난 39년의 시간이 비로소 완성되는 명예로운 퇴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우리 아빠.

- 아빠의 첫째딸 현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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