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수필가

누구 할 것 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산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 주고받기는 잦고 깊어 아프다. 남의 아픔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신경 쓰이듯, 타인의 상처보다 내 상처에 민감하다. 몸에 난 상처에 호들갑을 떨지만 마음에 난 상처를 치유하는데 인색하고 서툴다. 몸에 난 상처를 방치하면 덧이 나듯, 마음에 난 상처를 회피하면 깊어지고 오래간다.

트라우마(trauma)는 마음속에 깊게 난 쉽게 극복되지 않는 심리적 상처이다. 트라우마는 성인기보다 어린 시절에 겪은 상처가 인생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뇌에 남아 항상 현존하는 스트레스로 작동한다.

나는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최고의 스타로 동시대 남성들의 영원한 연인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마릴린 먼로의 비극적인 성장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16세에 결혼을 했지만 4년 만에 이혼을 했고, 미국인들의 야구 영웅으로 알려진 전설의 타자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세 번째 남편은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였다.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사랑을 나누었던 것으로 알려진 마릴린 먼로는 36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특히 미혼모였던 먼로의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먼로는 어린 시절에 여러 고아원과 위탁 가정에 맡겨지면서 애정결핍에 시달렸고, 아홉 살에 성폭행을 당하는 트라우마를 겪었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채워지지 못한 사랑에 집착한다고 했다. 먼로도 사랑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욱 상처를 받았고, 버림받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반면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1805년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와 문맹인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정신착란으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재혼하였다. 성장 과정은 가난했고, 정서적으로는 가족의 정이 목말라 외롭고 고독했다. 그러나 비천한 가정환경에서도 그는 글을 배우고 시를 쓰며 잠재력을 발휘해 나갔고, '내가 살아온 인생사가 내 작품에 대한 최상의 주석이 될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내면이 반영된 자전적 이야기인 대표작 '미운 오리새끼'와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같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명작 동화를 160여 편 남기고 일흔에 세상을 떠났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로 손상된 자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성인이 되어서도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야.'라는 질문을 던져 자기 존중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한다. 이남옥 교수는 "힘든 과거는 이제는 내 것이 아니다.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운명을 바꿀 선택권이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불행의 실체를 바라보고 불행의 상처를 끊기 위한 작지만 일상적인 노력을 통해 나를 옭아맸던 운명은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삶을 결정한다. 최광현 교수는 말한다. "트라우마 치료는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무엇보다 직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따뜻한 배려와 공감,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는 직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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