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변호사

틈틈이 목민심서를 읽고 있다.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집필한 500여권의 책 중 하나이다. 500여권이라니! 도대체 다산은 일도 안하고 글만 썼다는 말인가? 반쯤은 맞는 말이다. 다산은 여러 사건에 연루되어 한창 일할 30대 후반부터 약 19년간 땅 끝자락에서 유배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요즘 핫한 정해인이라는 남자 배우가 정약용의 몇 대 후손이라고 하고, 문언에 따르면 정약용도 그런 미소년 계열이었다 한다(웬 갑작스런 팬심인가?). 결국 바른 말을 거침없이 해대는 뇌섹미남은 당파싸움으로 나라를 말아먹던 기득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조선후기 유배의 아이콘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유배 막바지에 저술한 목민심서는 그 제목만 보아도 내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목민관(牧民官)'은 백성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스리는 지방 고을의 수령을 의미한다고 하니, 사극에 종종 등장하는 '사또'를 떠올리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심서(心書)'란 말 그대로 '마음을 다스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결국 목민심서는 '사또의 마음을 다스리는 글', 즉 '올바른 사또 지침서'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물론 목민심서는 목민관 한명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행사하는 것을 전제하여 기술돼 3권 분립이 엄격한 현대사회의 실상과 맞지 않거나, 실학자답게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인권의식이나 국민주권 사상이 확립된 요즘과 맞지 않는 내용이 일부 보인다. '목민(牧民)'이란 말도 짐승을 기르는 목축(牧畜)이란 말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백성(民)을 기른다(牧)'라는 뜻이니 요즘의 시각에 비추어 보면 경을 칠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과 국가체제가 다르고 반상의 도리가 엄연히 구별된 신분제 사회이자 사람을 재산으로 사고팔던 시절 언중의 단어까지 문제 삼기에는 목민심서에 담긴 정약용의 사상은 지극히 modern(현대적)하다.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국민을 떠받들겠다고 입으로만 떠드는 정부, 국회의원, 법조인의 태도보다도 기본적으로 훨씬 국민을 위한다.

권택인 변호사
권택인 변호사

목민심서는 모두 12편으로 되어 있고, 각 편은 다시 6조의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부터 제4편까지는 목민관의 임명부터 역할분담 등 목민관의 기본자세에 대해 기술하였고, 제5편부터 제10편에는 경국대전의 이(吏), 호(戶), 예(禮), 병(兵), 형(刑), 공(公) 6전을 기준으로 실천 사항을 상세히 저술하였다. 마지막 진황과 해관 2편은 빈민구제와 관련한 정책과 임기만료로 고을을 떠나는 과정을 상세히 적어 목민관의 임명부터 해임까지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송사에 관계된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송사를 다루는 근본은 성의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신독(愼獨 -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지금도 재판과 관련하여 이만큼 본질을 꿰뚫는 격언은 없다. 요즈음도 문제가 되는 신속한 재판과 관련해 "크건 작건 옥사의 판결에는 모두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이니, 해가 거듭함에도 그가 늙고 병들어 죽도록 방치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다"고 하였다. 재판 내용의 정의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의에 관한 이 정도의 감수성은 현대적 시각에서도 놀라울 정도이다.

물론 다산의 지혜는 사법 영역에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행정, 입법을 모두 아우른다. 현대 대한민국에 정약용이 세 명 있어 행정, 입법 사법권을 분점하게 한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지금처럼 실망스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회의원, 정치인, 행정기관의 장, 법조인이 다산의 목민심서를 일독하여 깨닫는 바가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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