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눈] 김동우 YTN충청취재본부장

김치 가운데 제일 맛 좋은 것이 3년 묵은 김치라 한다. 그렇다면 묵은 김치의 가치가 3년이 경계선이란 말인가? 3이란 숫자가 양수(陽數)인 데다 '3'를 다른 숫자보다 유독 중히 여겨온 우리 사고 풍습에 그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발효(醱酵) 정도가 중요하지 그 기간은 김치 가치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발효는 효모나 세균 등의 미생물이 유기 화합물을 분해해 젖산 균류 등을 생기게 하는 작용이다. 묵은 김치는 이 발효과정을 통해 고혈압,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 예방 효과에 좋은 항산화제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오래 묵어 상해도 먹고 싶은 생선이 있다. 준치다. 준치는 한자어로 '진어(眞魚)'인데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몸은 두께가 얇고 폭이 넓어 납작하다. '썩어도 준치'란 속담이 준치의 가치를 보여준다. 준치는 상한 것 수준을 넘어 부패해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맛이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준치가 얼마나 맛이 있으면 이런 속담이 생겼을까?

발효와 부패 모두 미생물이 조직을 분해하는 과정이다. 좋게 말해 분해이지 '썩다'는 뜻이다. 분해과정에서 우리 생활에 유익한 물질이 만들어지면 발효이고, 몸에 나쁜 물질이 만들어지면 부패다. 여하튼 김치나 준치 모두 상온에서 벗어나 오래되면 발효와 부패 과정을 거쳐 상하게 된다. 이럼에도 김치와 준치는 오래되고 썩어도 제값을 유지하는 셈이다.

'묵은 솔이 관솔이다. 묵은 관솔이 낫다'란 속담이 있다. 관솔은 송진(휘발성분)이 붙어있는 소나무로 특히 가지가 부러지거나 잘려진 옹이 부분을 말한다. 이 옹이에는 송진이 집중적으로 엉겨 있어 불쏘시개로 최고다. 가지를 자른 뒤 당장 관솔이 되지 않는다. 기간 오래되어야 관솔이 만들어진다. 그래야 관솔로 쓰일 가치가 있다. 이 속담은 연륜이나 경륜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잠언으로 쓰인다.

"무엇을 결정할 수 없다면 노인 3명에게 물어 두 명이 선택한 결정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란 중국 속담이 있다. 이 역시 '묵은 솔이 관솔'이란 점을 보여주는 속담이다.

김동우 YTN청주지국장
김동우 YTN청주지국장

천년을 묵어도 악기 소리를 잃지 않는 나무가 있다. 오동(梧桐)나무다. 천년을 묵은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도 그 소리는 여전하다고 한다. 이는 조선 중기 선조시대 명신이자 시인인 상촌 신흠(象村 申欽)이 자신의 수필집 '야언(野言)' 가운데 '매불매향(梅不賣香)' 제목으로 읊은 시에 나온다. "동천년로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 추위에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오동나무가 천년을 넘게 살아 고목이 되어도 명기(名器), 거문고 제조 재질로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얘기다. 봉황이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죽순(竹筍)이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래저래 오동나무는 죽으나 사나 천년 이상 제값을 유지하는 셈이다. 예부터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한자어 '오동(梧桐)'에는 거문고란 뜻도 있다.

김치와 관솔이 묵고, 준치가 썩고, 오동나무가 고목이 되어도 그 가치를 발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것들은 뒤로 밀린다. 낡고 썩은 것은 버려야 하고, 고목은 베어버려야 한다. 니체는 인간·비인간계 모두 '관계의 세계'라 했다.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필요한 대등관계다. 니체 말대로 '힘에의 의지'는 대등관계에서 발휘된다는 것이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니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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