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언론인·유원대 새로운 시니어문화연구소장

늘 돈에는 초연한듯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40대 남자에게 누군가 훈수를 뒀다. "이젠 자네도 이제 돈 벌어서 노후대책을 해야 되지 않나?", "그래? 자네는 계속 돈을 벌며 노후를 대비하게. 나는 일을 하면서 노년을 맞을 테니. 내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이야." 올 해 칠순을 맞은 개그맨 전유성이 마흔 살에 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위기의 남자' 한 장면이다.

전유성처럼 돈은 크게 못 벌어도 재밌는 일에 파묻혀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물론 노후에도 일하는 사람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가 2년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30.9%가 일을 하고 있었다. 용돈(11.5%)을 벌거나 건강 유지(6%)를 위한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 먹고살기 위해서(73%)였다. 우리사회도 노후빈곤의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노인인구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일본에선 가난한 노인을 의미하는 하류(下流)노인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일본은 65살 이상이 28%에 달하는 '초고령 사회'다. 그런데 이런 일본에서 노후를 위해선 2억 원이 넘는 돈을 저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다. 전 국민이 평생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연금 제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있다.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인생후반이 더 중요하지만 안정된 삶을 기대하기엔 너무 많은 리스크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오래 살고, 생각만큼 생활비는 줄지 않으며, 자녀문제라는 악재와 부동산에만 쏠린 자산 그리고 무서운 인플레이션이 노후생활을 옥죄고 있다.

그래서 일본도 '노후자금'은 늘 관심사다. 국민연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니치 신문 설문 조사에서 "공적 연금이 노후 생활에 의지가 되느냐"는 질문에 5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일본 금융청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보도를 보면 '노후 준비에 충분한 자산'에 대한 질문에 50대는 3천424만 엔, 60대 이상은 3천553만 엔이라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추산한 2억 원보다 1억 원 이상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50대는 1천132만 엔, 60대이상은 1천830만 엔 뿐 이었다. 지금 추세로 보면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1971~1974년 출생)가 받을 연금은 현재 월 평균 19만 엔(205만원)보다 훨씬 적은 15만 엔(163만원)으로 줄어든다. 가진 돈과 필요한 돈의 괴리가 크지만 정부는 '100년 안심'을 선언한지 20년도 안 돼 국민스스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라고 하니 여론이 악화된 것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언론인·유원대 새로운 시니어문화연구소장

하지만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은 666조4천억원(지난 2월 기준)에 달하지만 국민연금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정부는 이 돈이 오는 2057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저출산·고령화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금 지급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올해 7개 주요 글로벌 연기금중 바닥권(5.51%)이었다. 수익률이 1%p 떨어지면 기금 고갈이 6년 정도 앞당겨진다. 문재인 정부에서 스튜어트십 코드 적용 등 국민연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국민연금 조기고갈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자 문 대통령은 작년 8월 '국민연금' 지급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고 밝혔다. 그 말을 믿기엔 국민연금의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하다. 차라리 아베총리처럼 욕을 얻어 먹더라도 국민 각자가 노후자금을 비축하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 일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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