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 달 전, 평소 이 지면의 글을 읽어 주는 고마운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막 기생충을 보았다며 영화를 보고 꼭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칼럼을 써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후배는 영화가 '불쾌'했다고 표현했다. 그녀가 불쾌했던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그 뒤로 3주가 흘러갔다.

후배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봤을 영화를 한 장면도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 속에 보았다. 이미 영화가 상영된 지 한 달이 넘었고, 글을 쓰는 시점으로 960만 명이 영화를 본 것 같아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독자의 부탁을 핑계 삼아 오늘은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기생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냄새'와 '계단', '선'을 중심으로.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게도 기생충은 상을 받아 마땅한 영화로 보였다. 그동안 본 영화 중에 으뜸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냄새를 계층의 상징적 의미로 풀어낸 봉준호 감독은 정말 천재다. 박사장이 단순히 지하실 남자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고개를 돌렸다고 해서 죽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는 기택은 망설임 없이 칼을 들었다. 박사장이 기택의 선을 넘은 것이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복수'라 보았고 나는 어설프게나마 그것이 영화가 그때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냄새나는 이들의 어떤 '연대' 같았노라 말했다. 이 일로 기택은 죽어간 이의 뒤를 이어 기생충으로 살게 된다.

폭우가 쏟아지던 와중에 기택의 가족은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간다. 꿈같은 공간에서 반지하 현실로 돌아가는 기우와 기정의 발걸음이 멈추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넘어설 수 없는 계층의 차이는 이 계단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슬프다. 나는, 우리는 그 계단 어디쯤 있을까.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리기보다 그 냄새를 가지게 된 이유에 관심을 가진 적은 있을까.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일까. 도대체 그 경계는 어디인가.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택네가 처음부터 반지하에 살았던 것 같지는 않다. 영화 대사를 종합할 때 기택네는 사업을 하다 망해 반지하까지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불안했지만 그들이 박사장네 집에서 술을 마실 때 그들은 그냥 그 집 사람들 같았다.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이 나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기택네는 반지하에 살아도 가족끼리 우애가 좋고 박사장도 그동안의 전형적 부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예기치 않은 일로 얽히기 전까지 두 가정 다 나름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비가 그친 뒤 체육관으로 대피한 기택네와 가든파티를 준비하는 박사장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2017년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3%를 차지하고, 상위 10%가 50.6%의 부를 장악하고 있어 이미 가혹한 소득 격차에 직면해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빈곤의 악순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을 죽인 기택에게 내려진 형벌이 기생충의 삶인 것인지, 그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기택의 삶도 고귀하다는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 집을 사서 기택을 구원하려는 기우의 희망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영화가 가진 윤리적 접근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선과 악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묘미니까.

단순하지만 명확한 나만의 결론. 혹시 내가 조금 계단을 올랐다 해도 냄새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매우 당연한 사실의 확인.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선이 존재한다면 내 울타리라도 허무는 작은 시작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들게 한 영화라는 것.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