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단비
  • 중부매일
  • 승인 2019.07.0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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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그토록 간절하게 기다리던 비가 내린다. 밤새도록 주룩주룩 제법 빗소리가 요란하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와 행랑채 함석지붕위로 발장구를 치듯 떨어지는 빗소리가 화합을 이루니 운치를 더했다.

아파트에서 느끼는 빗소리는 조용하다. 모처럼 시골집에서 비를 맞이했다. 여기저기 양동이를 갖다 놓고 빗물을 받는다. 철철 넘치는 빗물로 뜰을 청소했다. 창틀도 닥아 보고 걸레를 빨아서 여기저기 먼지를 닦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늘이 지구를 대청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동안 아파트에 살면서 농막처럼 사용한 시골집은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던 참에 귀한 빗물을 보니 허드레 물로 마음먹고 뜰 청소를 시작 했다. 그동안 쌓인 먼지를 비와 걸래를 들고 쓸고 닦는다. 처마 끝 물받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은 쓰고 또 써도 채워졌다.

하늘도 지금 나처럼 지구를 청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부터 정리하고 치워야 할지 순서를 정하지 못해 뜨듯 미지근하게 찔끔거리고 비를 내렸던가.

사람들이 함부로 쓰고 버리는 쓰레기 더미가 하도 어마어마해서 아마도 시골집을 방치해 두었던 나처럼 두고 보셨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싱그러운 비를 맞은 정원과 텃밭 식구들이 활기차 보인다. 감자도 배배 말라가고 강낭콩은 땅에서 잡아당기는지 진딧물을 뒤집어쓰고 까만 얼굴로 울상이 되었다. 호박넝쿨도 한 낯이면 축 늘어져 있던 것이 싱싱한 얼굴로 넝쿨손을 내밀며 기어오른다.

밤새 내린 비 덕분에 만물이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리 노련한 농사꾼이라 할지라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풍작은 어려운 법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노오란 살구가 익어가고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회색빛의 콩새 떼들이 보리수 가지에 매달려 먹이 사냥을 즐긴다. 단비가 반갑다는 듯이 까치가 울고 산 비들기가 구구거리며 빗소리와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바라만 봐도 신비하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들인가. 정원에 피어있는 장미와 합혼나무 연분홍 꽃에 맺힌 물방울이 은구슬이 되었다. 흙냄새와 풀 향기가 거실 안으로 마실를 왔다.

매일 마시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모처럼 단비와 함께 싱그럽게 다가오는 풍경이 사랑스럽다. 담장에 바싹 붙어 피어있던 능소화가 기세당당하게 은행나무꼭대기에서 꽃을 피웠다. 초록색과 주홍색의 조화가 이색적이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마치 남북미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세계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정상이 손을 마주잡고 북한 땅을 걷는 모습처럼 느껴지는 까닭이 무얼까

자존감과 격식을 다 내려놓고 오직 평화를 위하여 지도자들이 함께 애쓰는 모습에 단비 같은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감동의 물결이 단비처럼 세계 곳곳을 흘러넘치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제까지 대국의 정상들이 이처럼 허심탄회하게 마치 이웃사촌들이 번개 팅을 하듯 만나는 모습을 보았던가.

은행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가 정상 꼭대기에 화사한 꽃을 피워낸 능소화 꽃을 다시 우러러본다. 만인이 그토록 소망했던 평화 통일이 하루빨리 이루워 졌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산새들도 단비에 목을 축이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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