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
  • 중부매일
  • 승인 2019.07.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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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병부 충남 서산문인협회 사무국장

태양의 열기와 짙푸른 신록 속 7월을 데우던 지난주 필자는 서산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에 참가했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이준호 서산문화원장님은 인사말에 이어 서산의 인물론(人物論)에 대해 말씀하셨다. 먼저 성리학의 전래자이며 서산 정씨 원조이신 정신보 선생은 남송 말기 간월도로 망명해 살았으며 아들 정인경은 1284년 충렬왕으로부터 서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 처음 사용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천문학자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제작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 유방택 학자, 서산 간월도 출신이자 7세 때 경남 땅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기여한 무학대사, 서산의 초대 태수를 7년 동안이나 지낸 최치원 선생 등이 있다. 서산은 삼한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됐으며 '낙토서산(樂土瑞山)'이라 하여 어염시수(魚鹽柴水) 즉, 생선, 소금, 땔나무, 물이 풍부해 예로부터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서산이 살기 좋은 고장에 살면서도 뛰어난 역사적인 인물이 많으나 이를 현창(顯彰)하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가슴이 아프다며 아쉬움을 남겼다.

필자는 청주하면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것이 있다. 학창시절에 처음 청주 북문로에 갔던 일, 약혼시절에 친구 내외와 찿았던 3·1공원, 그리고 수필가와의 문학 교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느덧 일행을 태운 버스는 충북대학교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976년 박물관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아 30여년을 봉직 하시다가 2007년도에 박물관장을 끝으로 퇴임하신 이융조 박사께서 우리를 맞아 주셨다.

서산 출신인 이융조 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돼 있는 석기, 짐승 뼈, 사람 뼈 등과 수양 개 주먹도끼 만드는 사람을 만져보며 구석기시대로의 여행을 떠나 보았다. 2층 전시실에는 중경 정착 후 임시정부가 한중 연대와 대중국 선전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중문으로 간행 된 독립신문 중경판(重慶版)인 독립신문 창간호를 매우 의미 있게 살펴봤다.

최병부 충남 서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이어 한국선사문화 연구원으로 이동해 서산 동서간선도로(잠흥~석림)개설구간 내 유적인 서산 석림동 유달리 유적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주 소로리 볍씨를 2003년 10월 21일 오창 산업단지에서 출토했다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에 위치한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이융조 박사의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갈판과 갈돌 붉은간토기 등 중원지역의 구석기문화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와 말을 타지 않았다는 마한 사람들의 유물을 흥미롭게 관람을 마치고 마지막 코스인 소로리 볍씨 기념탑으로 향했다. 청주시 마크가 볍씨를 형상화 했다는 설명을 들은 뒤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청주를 뒤로 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 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일 것이다. 먼 후일 서로의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삶이 되도록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불편한 몸이 신데도 불구하시고 서산에서 왔다하여 시종 일관을 상세하게 설명하신 박사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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