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1955년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태권도는 210개국 1억만명의 수련생이 수련하고 있는 세계인의 스포츠이자 한국의 무예다. 해방이후 한국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태권도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한국전쟁이후 한국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민간외교역할을 가장 잘 해 오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태권도의 역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전통무예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한국전쟁이후 새로 만들어진 신(新)무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태권도'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한 것은 1965년 8월 5일이다. 태권도 이전에 '태수도'라는 이름으로 대한체육회에 가입돼 있었다. 이러한 근거로 태권도는 '태수도'에서 '태권도'로 명칭이 변경돼 정착됐고 세계화된 것이다. '태권도'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은 공식명칭 사용 10년전이다. 이 명칭은 최홍희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들과 인사들에 의해 1955년 4월 11일 만들어졌으며 '대한태권도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기록도 있다.

태권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공수도, 당수도, 권법, 수박도 등 다양한 맨손무예가 국내에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무예를 조직화하거나 '00관(館)'을 만들어 무맥(武脈)을 만들었다. YMCA권법부 창설자인 윤병인 관장을 중심으로 하는 강덕원, 서울 용산역 부근의 교통부청사를 빌려 설립된 황기의 무덕관, 노병직에 의해 개성 송악산에 개관한 송도관, 군출신인 최홍희와 남태희에 의해 설립된 오도관, 서대문로터리에 이용우에 의해 개관한 정도관, 엘리트 출신이자 조선연무관 공수도부 출신인 전상섭에 의해 설립된 지도관, YMCA권법부 출신인 이남석이 체신부에 공수도 도장을 차려 설립한 창무관, 일본 공수도를 배운 이원국이 설립한 청도관, 조선연무관 출신인 이교윤에 의해 설립된 한무관이 있다. 이 9개 관은 태권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함께한 기간도장으로 불린다. 대부분 권법과 일본의 공수도였다.

최홍희 장군
최홍희 장군

이러한 기간도장의 대표자들이 모여 1961년에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가 된 '대한태수도협회'다. 이 당시 9개관들이 통합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국가재건 최고회의 포고령 제6호에 의거해 당시 사회단체 재등록에 관한 포고로서 문교부는 유사단체 통합을 유도한데 따른 것이다. 이를 계기로 '태수도'로 협의해 대한체육회에 가맹했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최홍희와 남태희 사범이 1955년 만든 합작품이다. 이들은 명칭을 제정하는 과정과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내는 등 공을 들였다.

군인이었던 최홍희는 일본 유학시절 공수도를 수련했다. 그는 해방이후 육군본부 직할 제1군단에 당수교관들을 두어 당수도를 지도했다. 군단 창설기념식에 29사단장을 맡고 있던 최홍희 부대원들이 당수시범을 보였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큰 호감을 가진 일화가 있다. 대통령은 시범을 보면서, "저것이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있던 택견이야?" "택견이 좋아. 이것을 전군에 가르쳐야 해. 그 서양사람들은 윗동이만 쓰는데, 발로 차면 빙그르르 주저 앉을게 아닌가?"하며 조크까지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통령이 무예에 관심을 보이자 당시 무예를 외면하던 군 수뇌부들을 설득시킬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한 최홍희는 '태권도(跆拳道)'라는 이름을 작명하게 된다. 최홍희의 29사단이 강원도 동해안을 포함한 일대의 작전 책임을 맡으면서,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 부대를 옮기게 되면서, 그곳에 체육관을 짓고 '오도관'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오도관의 '오도(吾道)'는 공자가 말한 '나는 오직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吾道一以貫之)'라는 의미로 당시 최홍희 장군의 의지가 담겨 있다. 당시 오도관 사범은 남태희를 비롯해 백준기, 고재천, 김석규, 우종림, 한차교 등으로 대부분이 청도관 출신들이었다. 최홍희는 자서전에 새로운 무예체계를 만들기 위해 1946년부터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10여년만에 가능성을 확신한다. 강원도 용대리에서 당수를 대신할 명칭을 고민한 끝에 태껸의 '태(跆)'자가 '뛰고 차고 밟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당수, 공수도보다는 주먹 권(拳)자를 사용해 '태권도(跆拳道)'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허건식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이러한 과정에서 군 내부의 모략과 당수, 공수, 권법 등을 사용하고 있는 일선 민간도장들의 반발 등이 있었다. 여기에 태껸을 고집하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한자로 쓴 '태권도 우남(跆拳道 雩南)' 휘호를 받으며 우려했던 것은 사라지고 공식명칭을 사용했다. 그러나 5·16 군사쿠테타가 일어나고 태권도라는 명칭이 아닌 1961년 대한태수도협회를 창립했다는 것은 의문이다. 당시 최홍희는 박정희보다 계급이 높았지만 5·16 군사 쿠테타 이후 박정희의 지위는 그 이상이었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휘호까지 받은 '태권도'라는 이름은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 체육학박사·WMC기획조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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