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1997년 개봉한 할리우드 공포영화 제목이다.

어느 날 밤 음주운전으로 행인을 친 남녀 고등학생들이 시체를 유기하고 진실을 덮어버리지만, 1년 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라는 편지가 날아들고 관련 인물들이 하나 둘 의문의 죽음을 맞는 내용으로, 개봉 후 영화 제목을 패러디(의도적 모방)한 말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얼마전 공무원 감찰 과정에서 진행한 휴대폰 포렌식 조사와 관련하여 논란이 뜨거웠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당사자 동의하에 감찰한 것이어서 문제없다."고 했지만, 수원지법 한웅희 판사는 "당사자의 동의를 근거로 체포·구속·압수·수색의 성격을 띤 행정조사가 적법하다고 보는 것은 법률유보 원칙과 영장주의를 동시에 잠탈(潛脫, 법률 규제 등을 교묘히 빠져나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포렌식이란 범죄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에 쓰이는 모든 과학적 수단이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옥스퍼드 사전은 '범죄조사에 적용하는 과학적 방법과 기술'이라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에 남아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서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에서는 범죄수사를 위해 '디지털 포렌식팀'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테러행위 차단 방지를 위해 유선·구두·전자통신에 대한 감청을 대폭 확대한 패트리어법(애국법)이 시행되고 있다.

옛날 땅이 없는 백성들은 지주에게 농토를 빌려 농사를 짓고 터무니없는 소작료를 바쳐야 했다.

힘없는 농민들은 마름(지주를 대신한 관리인)의 횡포에 이중고를 겪기도 했다. "내년에도 소작료를 올려야겠는데 여기 동의서에 지장 찍게나. 싫으면 말고."

수사기관에서 행하는 임의동행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한다.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위헌이 된다. 여기서 위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위력(威力)이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유·무형적인 힘을 말한다. 폭행·협박을 사용한 경우는 물론, 사회·경제적 지위를 이용하여 의사를 제압할 수 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 특수폭행죄 등에 있어서 범행의 수단으로 되어있다.

오래 전 감사원의 어느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監査(감사)에서 査(조사할 사)는 나무(木)와 빛(日) 땅(一)으로 이루어졌으니, 무릇 감사란 나무와 땅 사이에 빛이 들어가는 모든 곳을 속속들이 파헤치듯 하는 것이다."

사실 査(사)자는 木(나무 목)자와 且(또 차)자가 결합된 것인데도, 웃자고 각색하여 한 그의 말이 사람을 잡으라는 것 같아 거부감이 일었다.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 간통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어느 여인의 말이 떠오른다. "언제부터 제 몸뚱아리를 나라에서 관리했나요?"

공무원은 사생활도 국가에 담보해야 하는가? 스마트폰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동의에 거부할 공무원이 사실상 있을까?

올 해 들어 아는 사람 중에 검찰의 조사를 받다가 두명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려고 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공무원을 국민의 공복(公僕)이라 한다. 종이라는 뜻이다. 한자에서도 종 복(僕)자를 쓰고 영어에서도 servant(하인,종)를 써서 civil(public) servant라 표기한다. service란 단어의 어원도 servant다.

미국의 정치 평론가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저서 '똑똑함의 숭배'에서 "힘 없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의 원칙이 적용되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용서의 원칙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살 수는 없다"며 '책임의 불평등'을 설파했다.

조지 오웰의 1949년 소설 '1984'에 '빅브라더'라는 전지전능한 가공의 통치자가 나온다.

독점권력의 관리자들이 민중을 유혹하고 정보를 독점·왜곡하여 얻는 강력한 권력의 주체가 바로 빅브라더의 정보수집으로 완성된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2019년, 하늘에는 위성과 드론, 땅에는 CCTV, 사람에는 디지털 포렌식.

70살 먹은 빅브라더가 흉한 몰골로 금방이라도 뛰쳐나오는것 같아 등골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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