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우리나라 대중가수 중 유승준만큼 '문제적 인물'도 흔치않다. 유승준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데뷔곡 '가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각종 선행과 봉사로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추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입대를 3개월여 남기고 해외 공연을 이유로 출국한 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했다. 유승준이 국민들의 공분을 산 것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대중과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17년간 그는 '병역기피의 대명사'였다. 한국 입국이 봉쇄되자 중국으로 건너가 영화배우로 변신하고 앨범도 발표했지만 한국 내에서 유승준은 '투명 인간'이었다. 그런 유승준이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해 입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그가 가수로 재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입국이 가능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의 입국을 금지해 달라"라는 국민청원에 매일 수만 명이 동의하고 있다.

유명인의 병역기피는 대중을 자극하는 분노 유발 행위다. 우리나라 대다수 남자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했거나 앞두고 있다.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할 청춘들이 2~3년간 군복을 입고 엄격한 규율에 맞춰 병영에서 생활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대치하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건 안 하건 '국방의 의무'는 한국 남자들에게 통과의례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하게 적용된다. 이런 사회적인 룰을 파괴하거나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지탄의 대상이 된다. 유승준은 병역기피에다 거짓말까지 했다. 아이돌스타였던 그는 입국이 금지된 오랜 세월동안 손가락질을 받으며 40대 중년이 됐다. 인과응보(因果應報)다.

하지만 유승준만 비난받는다면 세상은 공평치 못하다. 그도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억울해 할 것이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병역기피 현황을 보면 정권이 바뀌어도 '돈과 빽'은 여전히 유효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년 전 매경 조사에 따르면 고위 공무원과 현역 의원 가운데 본인과 아들 등 2대 이상 대물림 병역면제를 받은 '병역 금수저'는 총 92명에 달했다.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국회의원 아들 17명은 모두 '몸이 아프다'라는 이유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 중에 상당수는 정확한 병역면제 질병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또 2012년 이후 5년간 한국 국적을 포기한 병역의무 대상자만 1만 7299명이었고, 이 중 약 90%는 유학 등을 이유로 외국 국적을 취득했다. 유학이 금수저들의 '병역 회피 코스'가 돼버렸다.

30여 년 전에 입대를 앞둔 대학생들 사이에 유행한 말이 있다. 사병은 '사람의 아들', 방위는 '장군의 아들', 군 입대 면제자는 '신의 아들'. 하지만 세월이 흘렀어도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유승준이 그토록 오랫동안 병역기피자로 낙인찍힌 것은 그가 당시 톱스타였기 때문이다. 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선 권력과 돈의 힘으로 '신성한 병역의무'가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은 수치가 증명한다.

하지만 의식 있는 국민들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한국군이 웰빙 군대로 변하는 현실이다. 힘겨운 군대 생활을 비유해 '물구나무를 서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은 옛말이다. 이젠 병역의무기간도 짧아지고 편해졌다. 최근 3년간 육군 신병교육대는 수류탄 투척 훈련을 안했다고 한다. 다칠지 모른다며 공용화기 훈련도 중단됐다, 훈련을 나가도 얼굴 피부가 나빠진다고 위장(僞裝) 크림을 기피하거나 완전 군장(軍裝) 훈련도 간소화해지고 있다. 여기에 주적개념도 없어졌다. 국방부는 올해 국방백서에 '북한군이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이런 군대에서 전투력과 군 기강을 들먹이기가 민망하다. 이러니 얼마 전 북한 목선 사건과 해군 2함대 경계 실패와 허위 조작 사건이 안 일어날 수 없다. 유승준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적이없는 군대, 일부 무책임한 지휘관과 국가관이 없는 병사 문제는 어떻게 할것인가.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언론인·유원대 새로운시니어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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