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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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9.07.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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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밭 한 뙈기에 올망졸망 작물이 심겨져 있다. 이제 막 꽃을 피우는 감자, 어린 나물일 때 먹었을 노란 유채꽃, 미처 뜯지 못해 웃자란 상추 사이사이 명아주가 보이는 밭에서 내 눈을 멈추게 한 건 파꽃이다. 땅을 향해 일제히 머리를 박고 있는 파무리들. 아침 일찍 점호 받으러 연병장에 집합한 군인들 같다. 둥근 모양의 꽃을 달고 하늘을 이고 선 저 푸른 기상. 대궁이 텅 비어 있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발기해 서 있는 파꽃을 보며 밭둑에 앉았다. 혈기왕성한 젊은 청춘을 보는 것 같다.

밭 가장자리에는 돼지감자도 심겨져 있다. 눈만 뜨면 밭에 나와서 작물들을 보살피는 아주머니는 언제까지 하실 수 있을까. 둘이 하던 밭일을 남편이 먼저 가신 후로 혼자 밭에서 산다고 한다. 밭에 인접한 친구네 공장을 갈 때면 아낙네 치마폭만한 밭에서 늘 흙을 만지고 계셨다. 덕분에 줄 세워 심겨진 작물을 철따라 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파는 음식에 주재료로 쓰이기보다 양념으로 많이 쓰인다. 파 기름이 되어 음식에 풍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멸치, 다시마와 육수로 우려져 국물 요리로 탄생하기도 한다. 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음식에는 파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음식에 주재료라고 우기지 않고 고명으로 오르거나 요리 재료에 스며든다.

대파꽃 옆에는 쪽파가 줄 세워 심겨져 있다. 쪽파는 그나마 파김치로 담겨진다. 주재료인 셈이다. 대파로 김치를 담그기도 하지만 보통은 육개장이나 라면, 볶음요리 재료에 어울린다.

봄과 여름사이에 피는 파꽃, 나도 꽃이라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다. 얇게 뿌리내려 뽑히기 쉬운 대파, 하얀 뿌리 땅에 박혀 그래도 꽃을 피웠다. 투박하지만 자북자북 피어있는 파꽃을 보면 파에도 꽃이 피나 싶게 생경스럽다.

반투명 껍질이 자연스럽게 벗겨지면서 꽃을 피운다. 하얗게 삐죽거리는 꽃모양이 특이하다. 이제 막 벙근 몽우리는 막에 쌓여진 채 있고, 꽃몽우리가 커질수록 막을 벗고 수술을 맘껏 펼치고 있다. 이 지구상에 종족번식을 위해서 노력 안하는 식물이나 동물이 없듯이 파꽃도 꽃대궁 위에서 한 계절을 불사르고 있다. 활짝 핀 꽃 끝에 노란수술이 앙증맞다. 원기둥 모양의 꽃줄기 끝에 공처럼 둥근 산형 꽃차례를 이루며 빽빽이 달려 핀다.

꽃 한 송이에도 무수히 달려있는 꽃술. 곧 검정색 씨앗들을 품어 내리라. 파꽃이 피기 시작하면 줄기가 억세 진다. 영양가가 떨어지고 맛이 없어서 먹기 안 좋다. 제 속 비워가며 씨앗을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파꽃은 희고 둥근 모양으로 피어 씨를 날린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세상의 중심에 서는 것, 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일, 힘 있는 자리, 남을 지배하는 삶의 방식에서 보면 보잘 것 없는 파꽃. 음식재료 조연에서 묵묵히 꽃 피워 씨앗을 품는 꽃. 장미꽃 다발은 받았어도 파 꽃다발을 받은 사람이 없는 거 보면 꽃이라기 하기에도 밋밋하고 수수한 꽃이다.

'꽃과 열매에는 자연의 작업이 가장 잘 응축돼 있다'는 루소의 말이 파꽃을 보며 되새겨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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