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예컨대 독일의 유일한 국경일은 10월 3일 통일기념일이지만 1월27일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가장 큰 국가적 행사로 치른다. 이날 연방 하원에서는 반성회의를 소집하고 모든 정치인들은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과거 유태인들에게 저지른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며 이런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홀로코스트 참회행사는 매년 반복되는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인은 물론 국민들까지 함께한다. 학교에서는 나치의 만행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교육을 한다. 이런 반성의 모습은 일상의 삶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독일 전역에 게뎅크슈타인(Gedenkstein), 즉 비망물들을 설치하여 역사를 기억한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게이트에 인접해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물도 그 중 하나다. 플 레버의 '독일은 유럽을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과거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2005년에 만들어진 이 기념물을 방문한 사람들의 수가 첫해에만 350만 명에 이르렀다. 베를린은 당시 나치당과 괴벨스 정권의 지지를 받은 도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통일 후 베를린이 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지자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는 곳으로 베를린을 선택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주도적인 행사를 통해 역사를 기억한다. 북한의 열병식이나 대규모 마스게임처럼 국가가 기획하고 홍보하고 주도한다. 일본은 일본스러운 방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독일은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어느 것도 공식적으로 기념하지 않는 방식이다. 여기에 국민들이 정서적인 힘을 보탠다.

이런 맥락은 군사적인 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행사했던 군사력에 자부심을 갖지 않으며 군복무중 사망한 군인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존경심을 표현하지 않는다. 일부 지방정부에 이를 기념하는 작은 기념관들이 있긴 하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초라한 편이다. 롬멜과 같은 전쟁영웅들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도 꺼린다.

이런 정도는 약과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의 압권은 거리 곳곳의 인도에 박혀있는 게뎅크슈타인이다. 가장 독일적인 경관과 친환경 도시로 잘 알려진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는 이런 불망의 표시들이 발밑에서조차 빛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음대 쪽으로 가는 인도, 프라이부르크 중앙역 뒤쪽 칼스루에(Karlsruhe) 방향으로 나가는 길의 인도에서 이런 게뎅크슈타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당시 이 지역에 살던 유태인들이 나치정권의 압박에 어떻게 견뎠으며, 어디에 은신했는지를 담고 있는 표식이다.

집단이나 국가가 아닌 개인의 역사까지도 게텡크슈타인을 만들어 반성하는 모습은 분명 다르지 않은가. 오늘날 독일인들에게 회자되는 '과거의 극복'이란 말은 단순히 과거의 부정이나 역사의 회피가 아니다. 역사의 진실에 대한 직시(直視)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부정이 아닌 역사와의 정직한 직면이다. 이런 독일과 독일인들 특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여전히 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독일인은 그들 스스로 죄인들이라고 말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자신들의 과오를 부끄러워하는 모습과 염치가 오늘날 독일을 다시 부흥시키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잘 알 듯, 여전히 독일은 유럽연합(EU)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살아있는 양심이 독일을 독일답게 만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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