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 작 '우아일체'
장영주 작 '우아일체'

충청북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내륙중의 내륙이다. 인체로 치면 귀중하고 소중해 꼭꼭 감춰 놓은 심장과도 같다. 그런가하면 외부로는 핏줄과 신경을 통해 어디든지 닿을 수 있는 센터중의 센터이다. 나는 충청북도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이제는 충남에서 기거하니 충청인임에 틀림없다. 고향이란 지도위에는 없는 곳이며 다시는 돌아 갈 수도 없는 곳이다. 고향을 찾는 향수란 단지 자기로의 여행이며 익숙했던 산천과 친구들의 기억이 동행한다. 내 기억과 이 산천의 이지러짐이 가속화되기 전에 소중한 고향을 고이 보관하려는 뜻이 늘 간절한 터이다.

이 역시 향수가 아닐까?

'향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옥천(沃川)출신의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1950 추정)이다. 고졸하지만 치밀한 시어와 그린 듯이 보여 지는 고향 옛 집과 가족, 어릴 적 놀던 때의 묘사는 마치 무성영화의 실개천처럼 가슴 깊이 고요하게 흘러간다. 비옥한 냇물, 옥천을 고향으로 둔 시인은 실개천이 조잘조잘 흐르며 토해내는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윽고 자신이 전설이 돼버렸다. 실개천은 결국 바다에 이르러 신화와 같은 꿈을 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라고'. 한약방을 하시던 늙으신 아버지와 검은 귀밑머리의 동생, 사철 발 벗은 채로 햇살을 등에 지고 하루 종일 이삭 줍던 아내. 12살 동갑내기로 결혼한 소꿉친구 같은 아내는 더 이상 아무러치도 않고 예쁠 것도 없다. 다만 고향처럼 언제나 품어 토닥여 주고 세상에게 상처받은 사내의 긴 한숨과 쓸쓸한 눈물을 애틋하게 씻어주고 훔쳐 줄 뿐이다.

온후하고 따뜻한 어릴 적 동무 '학제(鶴濟)' 역시 고향인 옥천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고향의 수려함을 자주 말하니 '향수'의 고장 출신답다. 애향심과 지역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진정한 향수는 다른 이의 고향도 사랑하고 공감하며 결국 나라사랑에 이르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그런가 하면 고향도 시대정신과 사람의 의식수준에 따라 진화한다. 가족이 깃들었던 고향을 사랑한다는 것은 '효심(孝心)'이고, 각 가정이 모인 국토 전체를 사랑하는 것은 '충심(忠心)'이며 각 나라와 모든 생명체가 깃들어 살아가는 지구를 사랑하는 것은 '도심(道心)'이다.

장영주 화가
장영주 화가

'어린이'들의 향수는 집에 머무는 효심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어른'의 향수는 효심을 넘어 충심으로 너르게 아우르며 나가야 한다. 신과 같은 어른인 '어르신'의 향수는 효심과 충심을 아우르고 도심을 향해야 한다. 지즐대는 실개천을 따라 강으로 힘차게 모여들고 이윽고 바다로 흘러들어 생명의 전설을 우렁차게 합창 할 때 진정한 고향을 가슴으로 되찾을 것이다. 나아가 가장 큰 고향인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우아일체(宇我一體)'의 경지가 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귀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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