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쳐디자이너

지금도 그날의 일만 생각하면 되우 쓸쓸하다. 가야할 길이 엄연한데도 머뭇거리며 뒷걸음질 치고 상처만 남았다. 청주의 대표적인 산업유산인 대농방직공장. 공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 개발이 한창일 때 마지막 남은 건물 하나가 있었다. 바로 동산 위의 예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대농방직공장 근로자들의 마음의 쉼터였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근로자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 고향이 그리울 때,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이곳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교회 건물은 대리석으로 축조했고 정문은 청주의 상징인 상당산성 남문을 형상화 하는 등 문화적 가치가 뛰어났다.

그런데 개발업자와 청주시에서는 이 교회건물을 철거한 뒤 공원으로 개발하기로 했다. 지역 주민들과 문화계에서는 보존하자고 했다. 나 또한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보존의 당위성을 설명했고 개발회사와 시청 관계부서에 보존의 필요성을 웅변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교회는 이렇게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그 누구도 이곳의 상처 깊은 풍경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기억과 추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비슷한 시기에 내덕동의 옛 연초제조창 건물이 법정다툼 끝에 청주시 소유로 확정되었다. 건물을 부수고 아파트나 쇼핑몰을 짓자는 여론이 나올 때 공장 내부를 훔쳐봤다. 넓고 높은 공간, 거칠고 야성적인 공장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곳에서 공예비엔날레를 하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방치됐기 때문에 비둘기 똥으로 가득했으며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실험실, 종교실, 목욕탕, 동아리방, 목공소, 식당동, 창고동…. 이곳은 희망을 불씨를 피우는 작은 나라였다. 1946년에 문을 연 청주연초제조창은 천여 명의 근로자들이 일을 했다. 한 해에 10억 개비 이상을 생산하고 10여 개 나라에 수출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도 다녀갔고 육영수 여사도 다녀갔다. 안덕벌에는 월급날마다 장이 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고상돈 대원도 이곳에서 근무했다.

2011년 가을, 불꺼진 담배공장에서 공예비엔날레를 개최했다. 빛바랜 풍경에 예술작품은 더욱 빛이 났다. 이를 계기로 불 꺼진 담배공장의 문화공장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유치되고 창고건물 하나 하나에 문화를 심었다. 올가을 이곳에서 비엔날레가 열린다. 주변의 안덕벌 일원에 생활SOC 사업이 전개 중이다. 불 꺼진 담배공장에 문화의 불을 켜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트팩토리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그런데 안타깝게도 담배공장의 빛바랜 풍경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생얼미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 곳에 거대 자본이 들어가면서 헐리고 칠하더니 옛 모습이 사라졌다. 이곳이 담배공장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요원해졌다. 아트팩토리는 옛 공장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하는 것이다. 문화재생은 공간의 가치를 살리면서 문화의 혼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철학을 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뚝 솟아 있는 굴뚝 하나가 생뚱맞게 보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곳이 70년의 산업유산이었음을 알 수 있는 히스트리관을 조성해야 한다. 담배공장의 빛바랜 풍경을 만난 수 있는 자료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로 특화해야 한다. 건물 안팎에 상처 깊은 풍경을 담으면 더욱 좋겠다. 그것이 문화이어야 하고 예술이어야 한다. 공간이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고 사랑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곳이 지역을 뛰어넘어 세계의 문화공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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