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때로는 설득도 해야만 한다. 이 소통과 설득이 우리의 삶의 여정속에 잘 이루어 져야 행복할 수 있으며 삶의 질 또한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정말 서툰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의견에 반하는 생각을 말할 때 대개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네 의견에 십분 공감해. 하지만 ~'이라고 말하여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느낌을 주긴 하지만 '십분 공감해 '라는 표현이 나오면 상대는 '이제 반론을 제시 하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따라서 이 표현은 가장 합리적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마음을 정말 편안하게 해주는 방법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하여 상대의 의견에 대한 언급도 없이 자기 의견만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자신은 자기의 말 습관에 대하여 전혀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만이 정답인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의 습관은 어른이 되면 고치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랫동안 몸에 밴 말의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말의 습관은 가급적 어릴 때 고쳐주는 것이 좋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작과 끝은 결국 공감의 크기가 결정한다. 무릇 공감력이란 상대의 마음을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어떤 말을 듣기를 원하고 어떤 행동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결국 공감력은 경청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경청이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 있는 동기(動機)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일을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한데 모아 놓으면 서로 말하려고 한다. 서로 말하려고 하니 공감할 수 없어 자꾸만 목소리가 더 커진다. 이때 한 아이가 친구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친구들이 소리만 키우는 공간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의젓하고 대견스럽게 보일 것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이에게 침묵하는 법 또한 가르쳐야 한다. 모두가 떠들 때 조용히 듣는 아이가 떠드는 아이를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있다. 모두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 줌으로써 서로간의 공감력을 신장시겨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경청 또한 매우 중요할 것이다. 경청의 크기가 곧 공감의 크기를 결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그의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그의 신발을 일주일 동안 신어 보아야 된다."라는 인디언 속담이 가슴을 저미어 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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