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닫힌 문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비어있었는데도 빈 방이란 느낌이 더 드는 것은 딸아이가 결혼을 하고 저만의 짝과 저만의 집으로 떠나고부터다. 생기가 없어진 빈 방에 온기를 불어넣지 않아도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서 다행이지 싶다.

추위로 접어드는 계절이었다면 을씨년스러웠을 터인데.

더운 계절이라 이바지 음식을 걱정했는데 이런 부수적인 위로가 숨어 있었나 싶다.

작은 액자에 들어있는 어렸을 적 모습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아기를 안 듯 품에 안아본다. 책상 앞에 앉아 그 애가 읽었던 책들에 서서히 눈이 간다. 한 권을 뽑아 천천히 읽는다. 즐겨 읽던 시집인데 왜 진작 공감하며 동기유발을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가 인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해 그 속에 묻혀 사는 아이에게 그런 것 볼 새가 어디 있느냐고 다그쳤다.

극성 부모를 좋게 보지 않으면서 자식이 여봐란듯이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전력 질주하길 바라는 대개의 그런 부모에 다름없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뒤늦게 교육학을 이수하면서 시작의 동기만큼 실천하겠노라 다짐을 했다. 돌아서면 바쁜 생활에 함몰되어 야누스의 다른 얼굴이 되었다. 부모는 한결같은 자세로 기다려 주고 믿어주며 지켜봐 줘야 하는데 직장생활을 핑계 삼아 기다려주지 못했다. 내 기분에 휘둘려 아이들에게 일관성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그때는' 엄마 반성문 ' 같은 책도 없었지 싶다.

여러 권 꽂혀있는 노트를 뽑아 펴본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꽂혀 있는 것을 무심히 보았는데 일기장이다. 아마 아이는 엄마랑 소통하고 싶어 은근히 봐주었으면 했나 본데, 퇴직을 하고 아이도 떠난 빈방이 되니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4학년 때 야영지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데 눈가가 시큰했다. 아이는 왜 그러냐는듯한 표정으로 멀건이 쳐다봤다. 직장인으로서 엄마로서 무서울만치 강한 어른이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씌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도내 영어웅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커플로 같이 나간 친구가 유학을 가는데 자기는 못 가서 속상하다고 적혀 있다. 어린 딸을 유학 보내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기억이 났다. 일취월장하길 바라는 욕심이 눈치도 없이 새파랗게 돋아 나오는데 뜻이 꺾인 아이는 그때부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골인을 해야 득점을 하는 운동경기에서 결과적으로 문전 데시에 그친 이유가 내게 있었다. 10여 년째 딸 대신 방을 지키는 무심한 분재를 향해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중얼거렸다.

인간을 자기 자신에 충실한 선수형 인간과 대 선수를 배출하는 감독형 인간으로 이분화하기도 한다. 나는 감독형 인간에 입문도 못했다는 참회가 밀려온다. 여직원 천여 명 중 하나 둘밖에 없는 고위직이란 꺼풀에 씌워서 자식 농사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뜨거운 눈물이 밖의 소나기와 박자를 맞추듯 빈 방을 두드린다.

당연히 부모가 먼저 갈 텐데 짝이 있어야 맘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결혼에 관심이 없는 딸을 은근히 채근했었다. 콩깍지가 씌우더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훤칠한 훈남 사위를 본다고 하객들이 이구동성으로 부러워했다.

그래선지 떨어져 살아선지, 결혼식 날 야영장에서 흘리던 눈물은 일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가 빈방에서 눈물을 소품 삼아 참회의 독백을 하다니.

그래서 '파울로 코엘로는 인간은 죄책감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행복이 가까이 오면 두려움에 빠져든다.'라고 하지 않았나 하며 기분 전환을 해본다.

그날 어미의 덕담처럼 "존중하고 배려하며 격려하고 응원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 이루기를 소망한다." 그날의 졸 시를 주문 외우듯 암송하며 빈 방 모놀로그의 막을 내린다.

이영희 수필가

늘 지금처럼

이제 두 사람은 하나가 되리.

천생연분으로 맺어져 한 곳을 바라볼 테니.

이제 두 사람은 외롭지 않으리.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동행이 될 터이니.

내게 집중하는 그대 있어 비바람이 두렵지 않네.

서로가 바람막이가 되고 지붕이 될 터이니.

이제 두 사람 앞에는

사랑의 꽃길만이 펼쳐지리.

이 축복의 대지 위에서

늘 지금처럼 건강하고 사랑하며 행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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