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당보리밥'
'꽁당보리밥'
  • 중부매일
  • 승인 2019.07.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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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규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麥(맥)!'

동네 아이로부터 쪽지를 건네받은 물 긷던 처자는 얼굴이 발개지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순돌이의 전갈이다.

'저녁 6시에 보리밭으로 나와!'

보리 맥(麥)자를 구성하는 래(來)자는 사람 둘(人人)과 18(十八)로 이루어졌으니, 저녁 6시(18시)에 보리밭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그것도 먼저가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뒤져서 오라는 남정네다운 배려까지….

예로부터 마을 근처에 있는 보리밭은 동네처녀 총각들의 밀회의 장소였다.

1m남짓 자라는 빽빽한 보리들 사이 움푹 들어간 고랑은 남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보릿고개!'

지난해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마저 제대로 여물지 않은 5~6월에, 땟거리가 없어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우리나라의 봄철 기근을 가르키던 말이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도 보릿고개 때 맛도 영양도 없는 거친 음식으로 인한 심한 변비로 항문이 찢어지던데서 유래된 것이다.

라면이 들어오기도 전인 1960년대 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는 민초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가?"라는 영조 임금의 왕후 간택 질문에 정순왕후 김씨는 "보릿고개가 제일 높은 고개이옵니다."라고 답했고, 시인 윤용기도 '보릿고개'를 애절하게 노래했다.

'보리피리 삘리릭/춤추는 소리/보릿고개 허기진 배/잠 못 이루네.

춘삼월 삘리릭/ 서러운 소리/뱃가죽 달라붙어/도랑물 이루네.'

조선조 최장수(83세) 왕 영조는 여름에 보리밥을 물에 말아 즐겨먹었다.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왕은 기본적으로 하루 다섯 끼(수라 세 번, 간식 두 번)를 먹었으나 영조는 세 번만 먹었다.

푹푹찌는 한여름 찬물에 보리밥을 말고 잘 익은 보리굴비를 잘게 찢어 얹어먹으면 세상에 뭘 더 바랄까!

한 번 쯤은 눈을 감고 절로 그 맛을 음미하게 된다.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매년 6월 25일에 보릿고개 체험 급식을 하는데, 꽁보리밥을 묽은 고추장에 비벼먹던 유치원 아가가 "선생님~ 밥이 자꾸 도망가요."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보리쌀알이 씹히지 않고 이리저리 도망을 다닌거였다.

요즘이야 설탕도 넣고 참기름도 넣고 하여 맛있는 별미떡이지만, 보릿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보리개떡(일명 충주개떡)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도, 보리 대롱을 뽑아 엄지손가락 크기로 자른 뒤 끝을 지그시 깨물어 납작하게 눌러준다음 입에 물고 불던 보리피리 소리는 멀리 고개를 넘어갔다.

'양반은 트림하고 상놈은 방귀 뀐다'라는 속담이 있다.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김규완 충북중앙도서관장

쌀밥 먹던 양반과 보리밥 먹던 서민들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가난한 시절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던 보리밥을 이제 건강을 위해 먹는다.

보리에는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 몸에 좋은 영양성분이 풍부하여 '동의보감'에서도 오곡지장(五穀之長), 오곡 가운데 으뜸으로 쳤다.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도 싸우기 전에 보리를 많이 먹어 스태미너를 높였다고 한다.

올여름에는 애민정신이 깃든 꽁당보리밥과 함께 더위도 벗하고 추억도 그리며 건강도 챙기는 '보리밥 피서'를 즐겨야겠다.

'본초강목'에도 '보리는 음(陰)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열을 없애고 기를 도우며 소갈(消渴, 당뇨병)을 없앤다'고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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