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7월 초 이태리 밀라노에서 열린 제102차 국제라이온스협회 국제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같은 해에 지구총재를 했던 이들 일곱 가정이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으로 유명한 크로아티아 여행을 다녀왔다. 오래전 거친 두브로브니크 이래 처음이다.

이번 여행의 중심인 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에 내렸을 때 수도임에도 작은 공항 규모에 일단 놀랐다. 일찍이 엄혹한 냉전시대인 80년대에 김성종 선생의 추리소설 '새벽에 오다'에서 공산국가이면서도 소련과 다른 비동맹노선의 대표를 표방하던 유고의 자그레브 공항얘기를 읽으며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했는데, 밀라노에서 항공기로 한 시간 여 만에 쉽게 도착하니 싱거웠다. 서로 다른 종교와 인종이 티토의 지도하에서 50년간 유고연방이라는 이름으로 제3세계의 주도국으로서 안정적으로 살다가, 그 사후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의 독립선언 이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거쳐 이제 여섯 나라로 갈라져 살기에 이른 최근세사. 그러나 다른 동구권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소득도 높았고, 지금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짧은 시일 안에 날로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세계 관광의 중심지가 된 곳.

이곳에서 일주일 여를 보내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 시원한 바람, 그리고 가는 곳마다 맑고 투명하며 잔잔한 아드리아 해(海)의 코발트 빛 바다, 때 묻지 않은 산과 호수와 동굴과 나무들. 크루즈여행처럼 하루에 한나절만 하는 한가한 관광스케줄, 호텔에서 아침마다 즐기는 서양식 뷔페, 저녁마다 먹은 푸짐한 현지음식, 유럽인들의 습관을 따라 식사 때마다 맛보던 와인, 동행자들과 나눈 사소한 삶의 이야기 등, 모든 게 내게는 기쁨이었고 추억거리다.

그렇게 떠났다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각 없이 수동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했지만 서운하지는 않다. 그게 곧 휴식이고 충전이다. 예전처럼 방문지의 많은 것을 알고 다녀온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카메라에 많은 것을 담으려 애쓰지도 않았다. 아무리 카메라에 잘 담아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 세밀하지 않고 느낄 수도 없다. 마음에 담으면 그 뿐이니, 꼭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인증사진 찍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쉬었다. 함께 한 이들도 고맙다. 그들과 나눈 사소한 대화 가운데 나와 다른 삶의 궤적을 확인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어떤 이는 여행이 세 번의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떠나기 전 계획하고 준비할 때, 여행 중에 있을 때, 그리고 다녀온 후 추억할 때. 그냥 다른 이들이 준비해 놓은 코스를 따라다니기만 했으니 첫 번째 기쁨은 없으나, 위와 같은 나머지 두 가지 기쁨이 있다. 정말 그렇다. 왜 여행하는가. 떠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 이제껏 모르던 것에 대한 호기심.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현재에만 집중하는 일상탈출. 쉼. 충전. 여러 가지 단어가 떠오르고, 그 모든 것이 옳다. 결국은 '돌아오기 위해서'라는 말로 집약될 것 같다. 마치 '왜 예배드리러 교회 가는가' 물을 때 답이, '돌아와 제대로 살기 위해서' 라는 것처럼. 돌아오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런 의미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여행'이라는 말을 쓰기 어렵다고 한 말이 맞다.

다녀온 뒤에 더 알게 되고 깊어지는 게 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음 쓰기가 싫어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떠났지만 여행 중에 발칸반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겨서, 여행지에서 인터넷을 통해 발칸반도에 관한 책을 두 권 주문해 받아놓았다. 신산하고 복잡했던 발칸반도 역사와 지리에 대해 공부해 볼 참이다. 이것 또한 여행이 준 행복이고, 이유다. 누군가는 또 떠나기 위해 돌아온다고도 했다. 나도 그렇다. 기약 없지만 언젠가 또 떠날 날을 기대하며 돌아온다. 그게 내 여행의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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