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만남이 있다. 그 첫 번째가 출산의 고통을 넘어 생명의 끈으로 이어진 넘치는 기쁨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로 자녀와 만나 비로소 한 가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Father and mother I Love You - 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각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연결하면 'FAMILY'로 깊은 뜻이 있는 '가족'의 어원이다.

아들공부 시키러 캐나다에 있다 2년여 만에 잠깐 나온 친구를 만났다. 기러기 아빠가 된 남편은 처음엔 외롭다더니 오자마자 잔소리를 해 대는 아내더러 이젠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며, 아들 데리고 빨리 가라 한단다. 머나 먼 이국땅에서 지내는 외로움을 달래 보려 아들과 드라이브라도 하자하면 "엄마 친구들과 가세요. 전 바빠요", "엄마 잔소리 좀 그만하시고 제발 혼자 있게 해 주세요." 두 남자들 사이에서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며 서글퍼지더라는 친구의 푸념이다.

아들만 둘인 친구는 남편 생일 날 축하 노래를 부르고나서 말 한마디 없이 멀뚱하게 앉아 있는 분위기가 너무 썰렁 해 "엄마가 춤추고 노래 할 테니 너희들은 박수 쳐."라고 했단다. 혼자 춤추고 장구 치는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져 이제라도 딸 하나 낳고 싶다는 아들만 있는 친구들의 '딸 타령'을 듣는다.

둘째 딸 낳고 축하인사차 병원을 찾은 친지들과 웃으며 인사 나누는 사이에 "지지배 낳고 뭐 좋다고 저리 실실대! 아들 안 낳으면 씨앗을 봐서라도 데려 올겨!"라는 싸늘한 시어머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선도 안 보고 데려 간다는 셋째 딸을 낳았다. 그리고 늦둥이 아들까지 보통의 다른 집보다 두 배인 우리 아이들 낳고, 키우느라 참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딸 많은 엄마를 부러워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나에게 때로 "잘 살았다!." 토닥이며 스스로 위로 해 주며 살아왔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선물한 기쁨은 이루 다 셀 수 없다. 사춘기 때, 출근 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눈에 확 들어오는 작은 포스터 "오늘은 우리 아빠 귀빠진 날입니다. 우리 아빠는 네 자녀를 이렇게 키워주셨지요. 고마우신 우리 아빠께 감사드려요. 여러분! 다같이 우리 아빠 생신 축하해주세요." 종이위에 써 내려간 통로 이웃들의 롤링페이퍼 축하인사에 부러움까지 딸 부잣집 아이들이 주는 깜찍하고 애교스런 행복선물은 넘치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얼마 전 남편의 정년퇴임식 순서에 자녀들의 감사패 전달이 있었다.

"아버지 당신의 인생을 존경합니다."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큰 딸 한나의 자부심이 되어주시고, 둘째 보람이에게 늘 푸르른 소나무로, 셋째 딸 가은에게는 언제나 빛나는 별로 반짝여준 그대. 막내 진우를 품어주시고 좋은 그릇으로 키워 주신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남매 드림.

그 속에는 가족으로 만난 아이들 키우며 함께 했던 엄마 아빠의 인생이 간결하고도 일목요연하게 들어있었다. 한 마디씩 자신의 마음을 담아 써 내려 간 가슴 찐한 감동의 선물이었다. 자녀의 수가 부의 상징이 된다는 요즘, 네 아이 키우는 엄마라 하면 깜짝 놀라는 그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자식은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전통에 가득한 화살과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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