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광희 청주시 국제협력관

7월12일 일본 경제산업성에서 열린 한일 실무자 회의에서 일본 대표들이 보인 무례는 수출규제가 지속됨은 물론 한국이 화이트국가에서 배제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뤄왔던 핵심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도록 일깨워준 것이다.

일본과의 무역 역조를 줄이고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핵심 부품·소재 개발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의 수출규제에 국가가 휘청거릴만큼 첨단 부품 개발을 소홀히했었는가? 무엇보다도 일본 핵심 부품의 가격과 품질이 뛰어났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국산으로 교체하는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또한 최종 제품 품질이 보장되지 않아 바꿀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중소기업은 정부 R&D 지원으로 핵심 부품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대기업에서 구입할지가 불확실해 처음부터 개발을 포기하곤 했다.

정부가 대·중소기업이 함께 핵심 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데 소홀히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지만, 국제 분업을 이용한 기업 경쟁력 제고라는 논리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시장이 위축 되고 있는데 일본 수출규제까지 겹치니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다. 험난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지만 여러 가지 긍정적인 신호도 있어 힘을 합하면 버틸 수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예상보다는 타격이 심하지 않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앙·지방정부에 피해 사례가 접수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외국인 투자에 힘입어 오히려 소폭이나마 상승했다. 미국 등 주요국 투자가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어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김광희 청주시 국제협력관
김광희 청주시 국제협력관

수출규제 3개 부품에 대해선 우리가 제조할 능력이 있거나 수입선 다변화로 조달이 가능해 시일은 다소 걸리겠지만 대처가 가능하다. 물론 9월 이후에도 일본정부의 수출 허가가 나지 않을 경우 한동안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 지난 7월 23일 미국 전자업계 대표들은 이번 수출규제로 세계 공급망이 붕괴되고 반도체 공급 지연으로 이어져 미국을 포함한 관련 기업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기업에게 피해가 발생한다면 미국 정부가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한·일 경제는 촘촘하게 엮여있다. 한국보다는 덜 하지만 일본 역시 피해를 보는 구조다. 한국을 계속 공격하기에는 일본도 내심 고민이 많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이어 일본의 수출규제로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 분업은 이전 상태로 돌이키기 쉽지 않다.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운 각자도생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근본적인 통상 질서가 변화하는 때, 정신력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일본 국민의 정신력은 강하다. 2011년 동일본 지진으로 전력이 부족했었는데 묵묵하게 참고 견딘 국가이다. 우리 정신력은 어떠한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싱가포르에서 근무했었는데 싱가포르인들은 당시 일어난 금 모으기 운동에 대해 놀라움을 표명했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본 관광 자제와 불매운동으로 우리의 정신력도 일본에 못지 않음을 다시 한번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지난 20여년간 미뤄온 핵심 부품 국산화가 이뤄진다면 일본과 중국이 함부로 공격을 못하는 경제강국으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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