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하는 말로 믿을만한 내용이 못됨

한여름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요즘. 신문지상을 가득 메운 일본의 경제침략 보도. 어떤 사안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하여 서슬 퍼런 칼 들여대고 상대방의 태도를 바꾸라는 식의 강압과 폭압. 이런 일이 21세기에도 이루어진다는 것. 과거 역사가 뒤풀이된다는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까?

한국의 징용자들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보상하라는 요구가 과연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라는 말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세계 10대 무역 강국인 대한민국이 징용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어 일본에게 보상하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쩌면 이들의 보상요구는 돈으로 보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죄, 그리고 그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리라.

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경제제제, 통상압박으로 풀려고 하면서, 해답은 한국에서 만들어내라 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웃과 대화하는 형국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정말 답답하다. 독일이 유럽의 가장 중요국가로 신임을 받을 수 있엇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과오를 깨끗하게 사죄와 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나는 일본은 동북아의 경제대국은 될 수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은 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대화가 불가능한 상대로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淸代(청대) 趙翼(조익)이 쓴 '구차시초'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宋代(송대), 蘇軾(소식)이 黃州(황주) 영남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매일 일찍 일어나 사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그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하여 상대방의 특징에 따라 화제를 정하여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들었다. 이야기할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귀신 이야기라도 하라고 권하였다. 상대방이 귀신은 결코 없다고 마다하면 蘇軾은 "우선 아무 이야기나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멋들어진 귀신이야기에 매혹되어 웃으면서 자리를 파하곤 하였다. 蘇軾은 하루라도 말상대가 없으면 마치 병이라도 생긴 양 마음이 울적해지곤 하였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大文豪(대문호) 蘇軾. 그는 대화를 정말 즐길 줄 아는 중국 최고의 재담가였다. 그는 상대방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마음 깊은 곳의 담아둔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우언과 비유로 재치 있게 전달하는 묘한 대화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한일 양국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리고 재치 만점의 대화법은 무엇일까? 미묘한 사안을 풀어나갈 재담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허나 근본적 해결은 '結者解之(결자해지)'가 아니겠는가? / 충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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