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로 반(反)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신라 정예군의 주둔지 10정(十停)을 근거로, 안라일본부설(安羅日本府說)의 허구성을 반증하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천지역의 향토사학자인 류금열(64)씨는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인 아유카이후사노신(鮎貝房之進)은 562년에 멸망한 임나십국 중 안라국(安羅國)은 함안에 아나가야(阿那加耶)로 비정한 이래 정설로 굳어졌다"며 식민사학의 토착화를 비판했다.

이어 "왜국(倭國)은 670년에 일본(日本)의 국호를 개정하여 안라일본부(安羅日本府)의 용언은 역사성이 결여되며 '일본서기'(720)는 가필과 윤색한 부분이 다수 발견된다"며 왜국이 삼한정벌로 주종관계의 식민학설을 부인했다.

그는 "209년 포상팔국(浦上八國)이 아라국(阿羅國)을 침공하자 신라군이 구원하고, 신라에서 514년 아시촌(阿尸村)에 소경을 설치한 사실에서 562년에 멸망한 임나의 안라국(安羅國)과 동일할 수 없다"며 음운이 유사한 안라국으로 전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라 법흥왕이 아시량국(阿尸良國)을 복속하여 아시량군(阿尸良郡)을 설치한 연혁에서 안라일본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며 임나가 멸망하기 전에 신라에 복속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류 씨는 "신라의 10정 가운데 소삼정(召參停)은 소삼현에 지금의 함안군 군북면에 544년 신라군의 주둔지 반경에서 562년에 임나의 안라국은 존재할 수 없으며, 양직공도(梁職貢圖)에 백제의 방소국(旁小國)은 신라 영토에 존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라의 영토와 신라군이 배치한 강역에 임나와 백제의 지명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소삼정(召參停)에 인접한 신라 신이현은 스에마쓰야스카즈(末松保和)가 임나 사이기국(斯二岐國)으로 비정하여 청풍 성열현인(省熱縣人) 우륵을 임나의 프레임에 엮여진 실체는 지금의 일본 일기도에 사이기국을 기만한 것"이라는 것.

우륵은 임나와 전혀 무관한 인물임을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10정 중 거사물정(居斯勿停)이 주둔한 거사물현(居斯勿縣)은 지금의 전북 임실군 청웅면에 신라의 정예군이 주둔한 사실에서 우륵의 12곡을 악용한 임나사현은 허구성"이라고 날조한 식민사학은 수용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키워드

#제천시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