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 김홍철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 김홍철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 각종 정체 모를 생명체들이 건물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신나게 자랑하던 전통 건축은 점점 사라지고, 짧은 100년 사이에 반짝거리고 밋밋하게 생긴 건축이 온통 세상을 뒤덮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후반, 각국의 산업화 경쟁이 점차 과열되자 결국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쓰나미처럼 한 차례 크게 휩쓸고 간 큰 전쟁은 많은 목숨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수많은 건물을 파괴했다. 전쟁이 끝이 나자 각 국가는 폐허가 된 지역을 빠르게 복구해야만 했다. 모든 게 속도전이었기에 대량생산만이 답이었다. 그래서 한 번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화려한 장식이 더는 쓸모가 없어진 건축은 점점 단순해져만 갔다. 그렇게 건축은 다른 산업 분야보다 뒤늦게 모더니즘으로 들어왔다.

그 시기에 바우하우스의 수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나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같은 거물급 건축가들은 전후에 무너진 건축을 빠르게 세우려면 국제적으로 통일된 양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이 양식을 '국제주의'라고 부르고 건축 선언을 했다. 이는 건물을 짓는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랐다. 벽돌로 쌓아 올린 벽이 몸통이 돼 건축물을 지탱한 과거 전통방식은 그 건물이 무너질 때까지 공간형태를 바꿀 수 없었지만 새로운 건축양식은 벽체 대신 기둥이 뼈대의 역할을 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공간구획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뼈대부터 만드는 건축이론을 '돔이노(Dom-Ino)'라고 하는데, 이것을 만들어낸 건축가가 바로 '르 코르뷔지에'이다. 그는 벽돌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버리고, 철근 콘크리트로 얇은 바닥 판(슬라브)과 기둥, 그리고 계단으로 골격을 만든 다음 다른 마감재로 건축에 옷을 입히는 방식으로 현대건축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1927년, 르 코르뷔지에는 수많은 건축 실험 끝에 혁신적인 이론인 '건축의 5원칙'을 정립했다. 첫째, 필로티로 1층을 비워 건축을 땅에서 띄운다. 둘째는 옥상에 정원을 만들어 사용할 공간을 확장한다. 셋째는 기둥을 건축 안쪽으로 밀어 넣으면서 기다란 수평 창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넷째, 건축의 입면 형태가 자유로워진다. 다섯째는 벽이 아닌 기둥으로 건축을 떠받들다 보니 자유로운 공간 분할이 가능해진다. 거기다가 그는 건축에 필요한 모든 수치를 인간행동반경으로 기반한 '모듈러(Modular)'를 만들어 건축에 적용했다. 건축의 5원칙은 현대건축의 기초가 됐고, 모듈러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방의 크기와 높이, 그리고 가구들의 기본적인 기준이 됐다.

그렇게 모든 이론을 적용한 건축이 있다. 현대건축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이다. 이는 최초의 근대건축물이다. 언덕 위에 하얀 건물이 반듯하게 서 있는 형상은 아주 세련된 현대판 파르테논 신전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대단해 보이는 건축물도 시련이 있었다. 사보아 가족의 주말 별장이었던 빌라 사보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과 미국인들에게 점령당해 도저히 쓸 수 없는 지경까지 간 데다가 재개발 사업으로 건물을 철거할 위기까지 놓이자 그에 반대하던 건축가들에 의해 복원돼 현재까지 존재하게 됐고, 2016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김홍철 '건축의 탄생' 저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건축가라고. 끔찍한 농담처럼 들리긴 하지만 전쟁이 새로운 건축 패러다임을 바꾼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건축은 진화했을 것이다. 나는 전통건축에서 너무 과격하게 넘어온 현대건축의 삭막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빌라 사보아가 현대건축의 시발점이긴 하지만 과거건축과 현대건축이 극명하게 나누어져 버려 무언가 연결점을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면 지금 도시는 어떤 형태일지 참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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