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난영 수필가

관음죽꽃이 처음 필때 모습. 질때가 되면 황금색으로 변했다 떨어진다.
관음죽꽃이 처음 필때 모습. 질때가 되면 황금색으로 변했다 떨어진다.

정년퇴직하면 날개를 접는 것이 아니라 활짝 펴리라 야심에 찬 꿈을 꾸었다. 바쁘다고 중단했던 박사학위, 관심이 많았던 꽃꽂이와 한지공예, 건강을 위한 수영과 골프, 여행 등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헤아릴 수도 없어, 어느 것부터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골프와 한지공예는 배우다 디스크만 도지고, 수영은 물이 무서워 제대로 입수도 못 하고, 욕심만 앞서 동분서주하다 다리까지 다쳐 병원 신세만 지게 되었다. 수술 후 서너 달은 그동안 열심히 살았으니 휴가를 얻었지 싶어 편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도가 없으니 갑자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낙심이 커졌다.

공직에 있을 때 한발 앞선 선구자 소리를 듣던 사람이. 생각할수록 어이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입원하면서 잠시 중단했던 중부매일 '수필 & 삶' 원고부터 썼다. 용기를 내어 그동안 문학지와 일간지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 첫 번째 수필집 '난을 기르며'를 발간하는 등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나이가 있어 골절된 부위가 쉬 붙지를 않아 목발을 1년 이상 짚다 보니 운동이나 여행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글 쓰는 일까지 중단하면 삶의 의욕마저 떨어질까 저어되어 아픔을 참고 견디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5년이라는 자숙의 시간을 보내고, 몇 년 전부터 조금 성숙해진 모습으로 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삶에 촉촉한 향기를 주는 꽃을 기르고, 글도 쓰며 안빈낙도의 삶을 즐기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화하고 식물과의 교감으로 정서적 육체적 에너지를 얻는다.

뜰 안에 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과 눈 맞춤하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꽃을 좋아하다 보니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꽃을 기르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주로 관엽수를 기르고, 야생화와 분재는 카페 정원에서 기른다. 아담한 정원엔 햇빛, 바람 등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양지식물 음지식물 모두 잘 자라고, 꽃들도 예쁘게 피어나 카페 손님들까지 행복해한다. 방글방글 웃으며 다가오는 꽃들의 매력에 빠져 하루라도 눈도장을 찍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다.

야외와 달리 아파트는 식물이 자라기엔 썩 좋은 환경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인데도 관음죽꽃이 몇 년 전부터 해마다 피어 기쁨을 준다. 이 관음죽은 40여 년 전 작은 아파트에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할 때 기념으로 들여놓은 것이다. 그 당시 유명한 정치인이 소철과 관음죽을 좋아한다고 하여 작은 것 한 포기인데도 제법 몸값이 나갔다. 큰맘 먹고 구매한 것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어찌나 도도한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깝지만 한옆으로 밀쳐두었다.

그래도 가끔 물은 주었다. 4년이 되면서 포기도 늘고 키도 조금 자랐다. 10년이 넘자 몸집도 많이 커지고 키도 훌쩍 자라 분주를 했다. 그때의 기쁨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화분 하나는 이웃에게 분양하고 하나만 가져와 베란다 화단에 심었다.

아파트 입주를 축하하듯 몇 년은 아주 잘 자랐다. 어느 해 겨울, 동장군이 기세를 떨칠 때 동사하고 말았다. 집안을 평안하게 해주는 화초라고 하여 애지중지했던 만큼 안타까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봄에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다른 화초를 심기 위해 뿌리를 캐내며 미련이 남아 자세히 살폈다. 놀랍게도 뿌리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어렵게 회생한 관음죽이 쑥쑥 자라 2011년도 봄에 꽃을 피우더니 가을에 아들이 결혼하는 경사가 있었다. 식물은 관심과 사랑을 주면 꼭 보답하고, 꽃은 우연히 피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귀한 꽃은 피웠으나 포기가 별로 없어 허전해 보였다. 식구를 빨리 늘리면 좋으련만 감감무소식이다. 비바람도 맞히고 거름이라도 듬뿍 주고 싶지만, 실내이니 마음뿐이다. 그래도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2016년부터는 해마다 꽃을 피워 나를 달뜨게 한다.

전문가들은 관음죽은 열대식물로 온도나 습도가 잘 유지되지 않으면 꽃을 피우기가 힘들다고 한다. 관음죽꽃은 향기도 없고 예쁜 자태는 아니나 피우기 힘든 꽃을 피웠다고, 남편도 좋아하니 집안 분위기는 핑크빛이다.

일생에 몇 번 볼까 말까 귀한 관음죽꽃, 꽃말은 행운이다. 마음이 모든 것을 지어낸다고 관음죽꽃뿐만 아니라 피우기 힘든 행운목, 산세비에리아, 우담바라 꽃이 피면 미소가 번지고 마음마저 넉넉해진다.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 경제적 자유, 자신의 꿈 실현, 가족 간의 사랑과 화합 등 행복으로 가는 길은 제각각 다르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무엇을 하겠다는 욕심보다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는 삶이었으면 한다.

좋은 글을 읽거나 식물을 기르다 보면 영혼까지 맑아진다. 훌륭한 문학작품이 아닐지라도 마음에 닿는 글과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내뿜는 나무와 식물들은 인류의 평생 반려자란 생각을 해본다. 향기도 없고 예쁘지도 않으나 행운을 불러온다는 관음죽꽃을 보며, 삶에 지친 영혼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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